주례는 남성 전유물이 아니다

입력 1997-10-22 14:21:00

오직 남성만의 영역(?)이던 주례 풍속도에 여성주례가 등장했는가 하면 부부 쌍주례까지 등장, 격세지감을 느끼게하고 있다. 또 주례없이 식을 진행하다가 객석에 앉아있던 선배부부가 나와서 덕담을 나누는 모습도 종종 발견된다.

공군 공보장교로 근무하던 이승권군과 뉴욕 파슨스쿨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제일기획에서 홍보그래픽 전문가로 활동하던 진은선양은 쌍주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쌍주례를 섰던 부부는숭실대 이삼열교수, 효가대 손덕수교수. 이들은 30년 지기였던 이군 부모의 제안에 의해 쌍주례를서게 됐다. 이군 부모는 그전에 딸의 결혼식에 춤을 추며 입장하던 손교수를 보고, 아들의 결혼식에 부부주례를 서달라고 제안했다.

여성학자인 손교수는 결혼식장에서 섭섭해서, 때로는 울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여느 신부 부모들과는 달리 곱고 건강한 딸을 낳아 멋진 사위를 아들로 삼았으니 왜 어깨춤이 나오지 않겠느냐며딸 결혼식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들어갔다. 이군과 진양의 결혼식에 부부주례가 올라가자 소란스런 식장이 일순간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이날 이삼열교수는 인내와 사랑을 강조하며 땅의본분을 진지하게 전했고, 손교수는 나 자신을 깰 것, 서로의 입장에 서서 볼것, 그리고 도인이 돼볼 것을 당부했다.

"21세기 결혼과 사랑법은 여(女)와 남(男)이 함께 결혼이란 배를 타고 도인이 되는 수업을 받는수련장"이라는 손교수는 '옛 나'를 버리고 고정된 틀에서 나와 상대방이 되어볼 때, 그 배는 궁극적으로 일심동체라는 인간최고의 절정에 데려다준다고 말한다.

"아내가 가시처럼 보이면 가시를 감싸고 부는 바람이 되고, 남편이 돌바위처럼 느껴지면 돌바위를 감싸고 도는 물이 되어라. 오직 내면에 힘있는 자만이 상대방을 감싸는 바람과 물이 되는 법"이라는 손교수는 새로운 가정이 태어나는 결혼식에서 남성주례와 여성주례가 함께 어우러져 온전한 지혜와 축복을 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부부 쌍주례 2호는 서경석목사와 신혜수교수(전주 한일신학대)다.

국내 여성주례 1호는 국민회의 신낙균의원. 신의원은 남성들의 영역이던 주례석에 과감히(?) 도전, 온전한 축복을 전해 여성주례를 꺼리던 우리네 혼례 풍속도에 큰 변화를 시도했다.대구의 첫 여성주례는 대구시의회 김도연의원. 김의원은 지난 9월28일 대구시종합복지회관에서열린 무료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장세영, 김상란씨 부부는 "처음에는 여성주례에 대해 어색하게 생각했으나 주례말씀이 너무나 피부에 와닿고 친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신경써주어서 인상적"이라면서 여성주례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의원은 주례를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들 부부들이 살갑게 살아가도록 늘 관심을 갖고 수시로 연락을 하겠다고 밝혔다. 12월14일에 결혼식을 올릴 예비 커플 유재근(34) 최의자씨(23)도 여성주례를 모실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도 대구여성회 부회장인 우순열씨는 결혼식날 선배부부인 이정선씨(여성신문대구지사장)이광오씨(영남대 교수) 부부를 모셔서 덕담을 듣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 결혼에서의 형식적인요소를 과감하게 삭제하기도 했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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