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명당과 대선주자

입력 1997-10-16 00:00:00

"구활 논설위원"

대선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싸움이 격해지자 하지 않아야 될 말과 해선 안될 행동들이 여과없이튀어나오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본인과 자식들의 병역문제가 일찌감치 순위를 뒤집어 놓더니 이번에는 정치권의 금기사항중의 하나인 비자금 문제까지 건드려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항상 그렇듯이 선거전에는 본인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가 들춰지기는 예사이며 선대들의 내력까지도 도마위에 올려져 난도질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번 대선전에도 예외는 아닌듯 조상의 이장한 묘터가 말썽이 되어 고발을 하느니 안하느니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장례문화 개혁 필요

우리나라의 전래 문화중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장례문화와 결혼풍속이다. 이 두가지 난제는 의식개혁 차원의 지속적인 운동과 캠페인이 선행되어야 하며 나아가서 사회지도층인사와 고위공직자들이 헌신적인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문제다. 고위공직자중에서도 통치권자인대통령이 골프금족령을 내리듯 자신의 가족부터 매장대신 화장을 하고 가족묘지를 없애고 납골당안치를 선언한다면 장제(葬制)에 대한 일대 변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차관등 고위직들이 대통령을 따라 매장에서 화장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공무원과 국영기업의 임직원들이 납골을 선택하는등 국토의 묘지화를 막고 장례문화를 간소화하는 일대전기가 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의 말없는 실천이 강력한 법보다 더 큰 효력을발휘하여 범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직대통령이나 전직대통령은 물론 미래의 대통령까지도 결혼과 장례의 대변혁을 선봉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진짜 능력있고 과감한 인물은 좀처럼 나타날 것 같지 않아 암담하고 막막하다.

◈조상묘소의 흠집내기

대선전의 신한국당 후보는 아들의 병역문제가 결정적 인기하락 요인이 되어 설문조사에서 3위로밀려나자 회복을 위해 온갖 만회작전을 구사하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이미 자신의 장기를 사후 기증키로 했고 또 화장을 선언하면서 국민회의측 후보의 사거용인(死居勇仁)으로 불리는 이장묘소의 불법상을 꼬집은 모양이다. 신한국당 후보의 한발 늦은 조치, 즉 군대에 안간 아들의 때늦은 소록도행이나 대선후보가 된 뒤의 화장및 장기기증 결정은 안한 것보다 나을지는 몰라도 득표와의 연결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국민회의 후보측도 공들여 이장한 조상묘소가 대선전의 말썽의 씨앗이 된데 대해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이 가족묘역은 천선하강(天仙下降)의 터로 자손중에 큰 인물이 나며 하기에 따라선대통령도 날 수 있는 명당이라고 하니 자칫 묘소의 흠집이 대선주자에 악영향을 주게 될까봐 내심으론 속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당보다 인간이 소중

대선주자가 명당자리를 선호하는 이런 풍토에서 우리 국토의 1%%가 묘지이며 해마다 여의도 크기의 국토가 묘지로 잠식당한다는 해묵은 소리는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선전을 앞두고 '명당이 대통령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꼭 전하고 싶다.등소평 시신도 화장한후 대만해협에 뿌려졌으며 주은래는 양자강에, 네루는 인도평원에, 아인슈타인은 델라웨어강에, 장 가뱅은 지중해에, 마리아 칼라스는 에게해에, 엥겔스는 도버해협에, 라이샤워대사는 태평양에 뿌려졌다. 그들은 결코 명당에 묻히지 않았다. 명당보다는 인간을 소중히 하는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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