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주의 철학에세이

입력 1997-10-15 14:18:00

"노래마시기" 내가 좋아하는 김소월의 시 님과 벗은 이렇게 읽힌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님은 사랑에서 좋아라/딸기꽃 피어 향기로운 때를/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그대여 부르라/나는 마시리'여기서 시인이 마시겠다는 것은 '술'이 아니라 '말'이다. 말을 마신다고? 이거야 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말이 되려면 시에서 '부르라'가 '부어라'라로 바뀌든지 '마시리'가 '들으리'로 바뀌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말되는 소리는 시장바닥에서 퍼질고 앉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김씨, 박씨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말 안되는 소리로써 말되는 소리보다 더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시인의 천재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마신다는 것은 몸과 하나되는 것

말을 마시고 노래를 마시는 시인의 경지는 어떤 것인가. 우선 마시는 것은 듣는 것과 다르다. 듣는 것은 그저 들려오는 소리에 귀만 열면 된다. 이것은 안락의자에 파묻힌 상태나 침대 위에서뒹굴며 게으름 피우는 중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대개 소리는 허공을 흔드는 바람처럼귓전에 스쳐지나갈 뿐이다. 어쩌다 기분좋고 흥겨우면 얼굴을 히죽거리고 손발이나 까딱거리면그만이다. 그러나 마시는 것은 다르다. 마신 것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서 위벽을 적시고 핏줄을타고 흐르며 세포막에 침투한다. 그래서 그것은 온몸에 스민다. 마신 것은 반드시 몸과 하나된다는 점에서 대개 귓전에 스치고마는 '소리'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갖는다.

그렇다면 좋다. '듣기'보다야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내몸과 하나로 되는 '마시기'가 좋은 것은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말이나 소리, 노래를 듣지 않고 마신다는 거냐. 귀로 들어가는 청각자료를목구멍으로 삼키고 뱃속에서 소화라도 시키라는 거냐. 그렇다. 이 일에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소리에 귀만 여는게 아니라 마음을 열어야 하고 손발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신을 맡길 수있어야 한다. 소리에로 내몸을 온전히 열어 철저히 안겨야 하는 것이다. 그 속에 스미고 잠겨서하나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소리를 마시는 것이다. 물론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먼저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수고가 다 헛될 뿐이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다른 음성들 가령 출석부 부르는 선생, 편지 전해주는 우편 배달부, 투표통지서 배부하는 동장등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않은 순간에 나타나 당신의 이름을 부르던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은 어떤가. 그것은 영혼의 충격처럼 다가와 아주 짧은 순간에 당신의 살과 뼈로 스미면서 온몸을 흔들어놓지 않았던가. 이것은그 부름을 그냥 듣기만한 것이 아니라 마셔서 내몸과 하나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적이 없다고?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은 스치는 사랑 혹은 말뿐인 사랑이다. 그러니 노래 마시는 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사랑하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산과 골짜기를 덮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단풍들, 청열하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등 지금 숲은 계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노래소리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온갖 일과와 약속에 시달리고 갖가지 청구서, 고지서, 통지서등에 허덕이느라 저 아름다운 노래가 허공 중에 속절없이 흩어져가게둔다는 것은 어쨌든 슬픈 일이다. 그러니 친구여 잎 떨군 나무 숲이 가을노래를 멈추기전에 산으로 가자. 그래서 숲더러 시인처럼 외쳐보자.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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