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309호 법정. 한맺힌 1년간의 법정 투쟁이 끝나는 순간 정병환씨(51)는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자해'로 터뜨렸다. 판결이 내려진 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칼을 꺼내 자신의배를 찌른 것. 공사대금 1천7백만원을 받아내려고 시작한 재판이 이렇듯 힘들고 지루하게 자신을괴롭힐 줄 몰랐다.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따라 9백여만원을 받게 됐지만 이제 돈은 더이상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지난해 10월 대구시 수성구 파동한 사찰 증축공사를 맡았던 정씨는 약 1개월간 공사를 한 뒤 공사주와 원청업자 사이에 벌어진 시비 때문에 갑작스레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미 공사비 2천7백만원이 들어간 뒤였지만 정씨가 받은 돈은 계약금 1천만원. 그때부터 나머지 공사대금을 받기위해 정씨는 변호사도 없이 혼자 법원을 드나들며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그러기를 1년여. 남은거라곤 사글세방과 일당 3만원을 벌기 위해 식당일을 하는 아내, 그리고 한없이 초라해진 자신뿐이었다고 했다.
재판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말 한마디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약서 한장 제대로받아두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불신과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 더이상 희망을기대할 수 없었다. 죽음을 결심한 정씨는 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번 일로 인해 누구에게도 원한을 가져선 안된다. 다만 너만은 강하게 사는법을 배워라…. 이렇게 해서라도 힘없는 서민들이 마음놓고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가진 자의 횡포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랄 뿐이다. 세상에 태어나 뭔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보잘 것 없는 삶을 살고 가는 아버지를 이해해 다오…'
칼에 찔린 정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고 있지만 중태다. 초췌한 모습으로 응급실 천장을 응시하던 늙은 근로자의 눈은 어느새 붉어져 굵은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金秀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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