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벗고 국제화 발돋움"
2차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을때 오키나와는 섬 전체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오키나와를 구하기 위한 움직임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던 오키나와인들에 의해 조용히 진행됐다.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일제의 징병과 강제징용을 피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이들이 벌인 사업은 '돼지보내기 운동'이었다.
'고향 오키나와의 부흥은 돼지 번식으로부터'라는 슬로건을 내건 호소가 공감을 불러 1차분 5백33마리의 돼지가 바다를 건넜다.
원래 오키나와 요리에는 돼지고기가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전쟁전에 오키나와에는 10만마리 이상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후 2천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해외로부터의 돼지보내기 운동으로 6년만에 전쟁전의 상태로 회복됐다고 한다.신년에는 돼지를 잡아 제사지내고 제주도의 경우처럼 농촌 뒷간에서도 사육하는 풍습이 있는 오키나와에 있어서 '돼지로 오키나와의 독립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돼지와의 관련은 깊다. 이는 해외로 떠난 오키나와인들의 고국을 생각하는 정성이 지극함을 말해주고 있다.이러한 오키나와에 우리 한국인 동포들도 의외로 많이 살고 있다. 대개가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돼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현지에 남은 사람들이다.오키나와를 담당하는 후쿠오카 총영사관의 김구동영사는 현재 오키나와에는 1백56세대 6백7명의한국인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거류민단 사무실에 등록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전쟁후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한국민단 오키나와지부에 의하면 그밖에도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가족을 따라와 살고있는 한국인들도 약3백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오키나와 전쟁시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와 종군위안부로 참혹한 나날을 보내다가 전쟁이 끝난후 오키나와에 그대로 눌러 살며 일본인과 결혼한 위안부 출신 한국인 할머니가 있다는 제보를들었었다. 각지에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진 못했다. 이처럼 아픈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한국인들이오키나와에는 의외로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 추석에는 오키나와에 살고있는 한국인 가족 60여명이 오키나와전쟁 한국인위령탑 앞에 모여행사를 가졌다. 행사가 끝난후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갖는 등 민족의 뿌리를 확인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최근 오키나와의 오타지사는 '섬관광정책' 포럼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했다. 이자리에는 제주도지사, 오키나와현지사, 인도네시아 발리주지사, 중국 해남성장이 참석해 섬의 매력을 관광에너지로삼아 새로운 해양시대를 전개한다는 제주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국제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과의 적극적인 교류에 나서고 있다.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오키나와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유사시를 대비한 미군의 주요 군사기지라는 점이다. 과거 월남전 당시에도 오키나와 카데나공군기지와 미해군기지는 물자보급창의 역할을했고 미본토에서 공수돼온 군인및 파월 청룡, 맹호부대원들도 이곳을 거쳐 이송됐다. 팀스피리트훈련 등 한미합동훈련시 한반도로 파견되는 해병대 전투부대와 미공군 전투기가 발진하는 곳도오키나와이다.
이제 10회에 걸친 오키나와에 관한 연재를 마감하려 한다. 21세기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생각해야할 또 다른 현실은 오키나와를 군사적인 면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한국과 오키나와는어떤면에서는 서로에게 거울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과의 역사적인 관계, 일본의 침략, 미군기지 반대운동 등을 생각해보면 오키나와 문제에 대한미일양국의 대응이 우리에게도 다양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도쿄.朴淳國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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