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 예산 편성 속사정

입력 1997-09-26 00:00:00

내년도 예산안은 경기침체로 걷어들일 세금은 부족한데 돈을 달라는 곳은 많은 처지에 있는 정부의 고심이 역력히 드러난다. 나라살림살이를 대폭 긴축해야 하는 마당에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택한 묘수는 두가지이다.우선 내년에 성업공사의 부실채권정리기금에 5천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던 것을 산업은행출자로 전환, 산업은행에 5천억원의 국채를 현물로 출자하는 방식으로 예산규모 증가율을 0.8%%포인트 낮췄다.

또 추곡수매물량 가운데 정부수매량을 줄이는 대신 농협수매량을 늘려 정부가 시가와 수매가의차액만 농협에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국고지출을 2천8백억원 가량 줄였다.

어떻게 보면 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예산 편성방식을 통해 정부는 예산증가율을 당초 목표보다 낮은 5.8%%로 묶으면서 농어촌구조개선사업, 국민총생산(GNP) 5%% 교육투자 등 대통령공약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하라는 정치권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내년에 세수가 사상 최악의 부진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대통령 공약사업을 당초 일정대로 추진하려다 보니 국민의 세금부담은 대폭 늘어나게 됐다.대통령 공약사업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 교통세, 교육세의 탄력세율을 인상, 모두 1조원의 국민부담이 추가됐고 교육투자재원 중 1조원을 중앙정부의 예산규모에 포함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의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토록해 그만큼 국민부담이 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에 국민 1사람이 부담해야 할 조세부담액은 사상 처음으로 2백만원을 넘어서게 됐고 조세부담률도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21.4%%로 높아지게 됐다.

정부는 이같은 공약사업 추진에서 늘어난 재정지출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지출은 대폭 줄였다.

이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정부지출. 우선 공무원봉급 인상률을 올해의 5.7%%보다 크게 낮은3%%로 억제하고 정부출연 및 보조기관의 보수 역시 이와 같은 수준으로 묶었다. 또 일반직 공무원 1천8백8명을 감축하고 최근 수년간 40%% 이상의 증가율을 보여왔던 청사건립비도 14.3%%로낮추는 한편 업무추진비, 여비 등 경상경비도 2조2천억원을 절감한 올해 수준으로 동결했다.또 방위비 증가율의 둔화도 특기할만 하다. 그동안 10%% 이상의 높은 증가세를 계속 유지해온방위비는 내년에 6.2%% 증가하는데 그쳤다. 정부는 당초 방위비 증가율을 4%%로 일반회계 증가율 수준에서 묶는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국가 경쟁력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분야에는 긴축기조 속에서도 많은 재원을 할양했다.

SOC예산은 비록 올해 증가율(24.3%%)의 절반 수준이지만 내년 예산증가율에 비해서는 2배에 육박하는 10.8%% 증가한 수준으로 책정했고 사회복지분야에 12.8%% 증가한 4조8천59억원, 중소기업 지원에 12.9%% 증가한 3조2천1백50억원, 환경보호에 15.6%% 늘어난 2조5천1백35억원을 각각투입하기로 한 것은 나라살림을 최대한 긴축하되 쓸곳에는 과감히 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긴축과 정치권이 요구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민의 세부담을 늘린 것은 정치논리에 경제가 희생되는 또 하나의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는 비판은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鄭敬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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