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이야기-식물의 예산분배

입력 1997-09-23 14:16:00

어릴 때 집 울타리 주변은 온통 감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어느 한 해에 감이주렁주렁 많이 달려있어 좋아하다가 그 이듬해에는 감이 형편없이 적게 열려 매우 실망하곤 했던기억이 난다.

실제로 감나무뿐만 아니라 많은 과일나무들이 흔히 이와 같은 해거리를 한다. 초본류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다. 1년 또는 2년내에 한 살이를 마치는 새포아풀은 첫 해에 꽃을 많이 피우면 피울수록 그 이듬해 새로 생긴 개체는 꽃 수가 적고 식물체의 크기도 작아진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명이 긴 어떤 식물들이 일찍부터 씨 만들기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투자하면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현상이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의 종려나무인 10년생 아스트로카리움 멕시카눔을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나무가 10개 미만의 열매를 달면 15년생이 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는확률이 1백%%가 되나 20~30개의 열매를 달면 그 생존확률이 75%%로 떨어지고 45개 이상의 열매가 맺히면 5년 이내에 죽어버린다.

식물세계에도 3가지 대표적인 예산(에너지)분배 형태가 있다. 즉, 수명을 짧게 하고 번식에 많은투자를 하는 형, 수명을 길게 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잎, 줄기, 뿌리에 많은 투자를 하는형, 환경 스트레스가 심한 지역에서 저항성을 강화하여 생존력을 높이는데 가장 많이 투자하는형태가 그것이다.

불도저에 의해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곳에서는 새포아풀, 바랭이, 강아지풀, 망초등과같이 작고 많은 씨를 무수히 많이 남기고 한 살이를 재빨리 끝내는게 가장 성공적인 삶의 방식일것이다. 그러나 토양이 비옥하고 햇빛이 충만한 안정된 곳에서는 모든 식물이 너도 나도 자리잡고 살아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는 남보다 먼저 잎을 내고 뿌리를 내려햇빛과 물과 염분을 더 빨리 더 많이 확보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반면에 솜다리처럼 고산지대의강풍과 추위속에 살아가는 식물, 용설란류나 선인장류처럼 물이 귀한 사막에서 살아가는 식물, 순비기, 통통마디처럼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데 가장 많은 투자를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부양계인 자연계의 기능이 가속적으로 파괴되는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한 가장현명한 예산분배는 어떤 것일까? 행여나 경제성장을 핑계로, 또는 사업실적을 보이기 위해 자연성 파괴를 대가로 하는 개발에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예산분배를 하지 않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유승원〈영남자연생태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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