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법 전면 개정 의미·배경

입력 1997-09-20 00:00:00

'남성우위'의 유교전통아래 반세기 가까이 고수돼온 '부계(父系)혈통주의'라는 국적법의 기본틀이완전히 뒤바뀌었다.

간단히 말해 한민족의 피가 반만이라도 섞이면 모두 우리국민이 될 수 있게 된것이다.지난 48년 국적법 제정 이래 세차례에 걸친 부분개정 과정에서나 국내외 인권단체등으로 부터 '남존여비 사상'의 유물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골간'을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회저변에 뿌리내린 보수적 유교사상 때문이라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단 정부가 개정 배경으로 내세운 명분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책임, 권리와 의무를 남성과 똑같이 인정하겠다는 것. 즉 이미 우리 헌법이 표방하고 있고, 정부가 가입한 UN의 '여성차별철폐협약'등 국제조약이 보장하는 남녀평등 원칙과 세계적 입법조류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것이다.사실 국적법상 부모양계혈통주의 채택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국가들이 오래전양계혈통주의를 채택했을 뿐만아니라 보수적인 일본도 64년 '출생시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일본국민일 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고쳤다. 중국은80년 국적법 최초 제정당시 이를 인정했고북한 역시 부모양계혈통주의를 채택하고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개정이유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에 대한 법적, 인권적 보호의문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외국인 남자와 우리나라 여성 부부사이에 출생한 자녀들은 현행법상무국적자로서 취학이나 의료보험, 범죄피해구조등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사회보장 혜택으로 부터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법 개정으로 이같은 무국적 자녀들이 별도의 귀화및 국적회복 절차를 별도로 거치지 않고도출생과 동시에 호적신고가 가능하게 됐으며, 이에따라 우리국민으로서의 권리처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자녀들이 현행법상 미국등 출생지주의 국가에서 출생, 이중국적을 갖게되는경우와 같이 출생과 동시에 외국인 부(父)의 국적도 동시에 취득하는 '선천적 이중국적자'가 된다는 점이다.

특히 현재 동남아 및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온 근로자, 산업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 수가 22만명선을 상회하는 수준이어서 앞으로 이같은 선천적 이중국적자는 무한양산될 공산이 높다는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이같이 출생에 따른 이중국적자들에 대해 만 21세가 되기전까지 국적을 택일하도록 하는 '국적선택제도'를 도입, 이를 보완할 방침이나 현실적으로 방대한 이중국적자들에 대한행정관리상의 문제점등으로 인해 이중국적자 급증은 불가피한 추세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또한 이들 선천적 이중국적자 대부분은 성향상 우리국민으로서의 인식이 없고 한국국민으로서의권리의무 관념이 희박한,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국민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이에 정부는 이들 이중국적자 가운데 만 18세이상의 남자의 경우 병역을 마치거나 면제받은 경우에 한해서만 국적을 포기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중국적자 수를최소화하는 것과 상충되고 이들 대부분이 병역을 면탈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현행 병역법상으로는27세까지 병역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체계적 병역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외국인 남성과 우리 여성 사이에 출생한 자녀들의 경우 현행법상 호적등재시에 모(母)의 성·본을 따를 수 없도록 돼있어 민법이나 호적법등 관련법의 정비가 시급히 필요할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한편 개정되는 국적법에서는 외국인의 대한민국 국적취득이 실질적으로 보다 엄격해진 점이 주목된다.

현행법이 보장하는 결혼·인지(認知·외국인과 자녀를 낳은 뒤 결혼할 경우 그 자녀에게 우리 국적을 허용하는 것)·귀화 등 국적취득 수단 가운데 무분별한 위장결혼을 막기위해 결혼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특히 '수반취득제(귀화 또는 국적회복시 부(父)의 국적을 따르도록 하는 제도)'를 폐지함으로써여성과 미성년자의 국적선택권을 적극 보장함과 동시에 결혼한 외국인여성이 별도의 국적취득 절차를 밟도록 해 국적회복을 위한 위장결혼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수반취득제도에 따라 중국 조선족 여성과 같이 외국인 여자가 내국인과 결혼한 뒤 6개월안에 국적을 포기하면 자동적으로 우리 국적이 허용됐던 것과는 달리 우리국민과 결혼한 외국인 남녀는 모두 2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한 상태에서 국내에 거주해야 귀화신청을 하도록 한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개정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되기까지는 민법, 호적법, 병역법등 관련법 정비를위해 통상적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까지의 유예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나정부는 일단 개정안이 국회통과를 거치는대로 최단시일내에 관련 법규를 정비한다는 방침이어서빠르면 올해말부터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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