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같은 하늘을 쳐다보고 살 수 없을 만큼 원한에 사무친 사람도 죽어서는 서로 이웃해 살고 누명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원혼(寃魂)도, 천군만마를 호령했던 장부의 기개도 묵묵부답….죽음은 모든 원한과 욕심을 잊게하는 분수령인가. 역사의 중심에 서서 굴곡 많은 삶을 살다간 부족장, 한 마리 학처럼 살다간 대학자, 아니면 뭇사내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명기(名妓)도 시공을초월하면 우리와 똑같이 삶의 애증에 몸부림치던 이웃인 것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과 사연들이 묻힌 고분밀집지역. 대구도심과 외곽에는 가족이 함께 답사할만한 고분군이 많다.
약간은 으시시하기도 한 산속의 묘지와는 달리 낮은 구릉이 언덕을 치고 드문 드믄 노송이 벗해주는 고분군은 초가을 누른 황금들녁과 함께 찌든 마음의 때를 벗겨주기에 충분하다.대구시 동구 불로동 고분군(사적 제 262호)은 우리 나라 최대의 고분밀집지역. 직경 17m 이상의대형고분만 22기, 12~16m 짜리 중형분 50기, 소형분 1백40여기 등 2백20기가 밀집해 있다.4~5세기 경 삼국시대 토착지배세력의 집단묘지다. 불로동 고분은 팔공산 자락끝 양지바른 구릉에시내를 굽어보고 어깨동무하거나(쌍분) 누가 더 큰지 뽐내듯 우뚝우뚝 솟아 있다.구릉정상에는 권세높은 대형봉분이, 구릉에는 가신들로 추정되는 중·소 규모의 봉분이 질서있게정렬해 있다.
누렁이가 무엄하게도 부족장의 안식터에 많은 흔적을 남겼고 봉분 잔디도 1천년 풍상이 버거운듯잡초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어미무덤이 양 팔(축대)을 벌여 아기무덤을 감싸고 아기무덤은 어리광부리듯 아늑하게 누웠다.억새풀 남실거리는 사이길을 거닐며 고분속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대화를 나누는 아빠와 아들의모습이 정답고 풀벌레도 길을 막으며 환영사를 한다. 술래잡기, 진뺏기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도눈에 뛴다.
길을 가다 숨이 차면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 도심을 내려보며 가난과 영욕, 권세와 부귀를 음미해 보는 것도 작은 기쁨이다.
영남대 양도영 학예연구원은 "불로동 고분군은 일본 특유의 묘제로 알려진 전방후원분과 이 지역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돌무지무덤도 있다"며 "우리 지역에 세계적인 고분군이 있다는 사실을 잘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인 김모씨는 "학생들의 견학장소나 가족단위로 한나절을 보내기에 멋진 곳이다"며 "주차장이나 간이화장실이 없는 것이 다소 흠"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산 임당-조영동 고분군(사적 제330·331호)도 쉽게 가볼만한 유적. 택지개발이 한창인 주변지역과 대비되어 그야말로 도심속의 전설을 보는 듯하다. 앞으로는 경산들녘의 과수원과 벼가 시원한가을 바람에 파도를 일으키고 뒤로는 빌딩들이 내려보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크기가 다른 표주박형 고분이 사이좋게 누워있고 3쌍의 고분이 서로 감싸며 떨어질 줄 모른다.특히 임당 7호고분군은 내부관람시설을 만들어 고분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이밖에도 칠곡 구암동 고분군, 팔공산 용수동·미대동 고분군, 대구서변·팔달·금호동 고분군도훼손되기는 했지만 이 가을에 들러볼 만하다.
고분군 속 주인공 가운데 누구를 실패한 인물로, 누가 성공한 인물인지 평가를 해보며 삶의 성찰의 시간을 갖고 내 삶을 좀더 윤택하게 가꿀 마음의 여유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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