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두 여인의 죽음이 있다. 60여년을 사랑과 봉사의 헌신적 삶을 살다가 하느님나라로 간 테레사수녀와 아랍 부호의 아들인 연인과의 밀회끝에 자동차사고로 죽은 다이애나다. 종교와 국경을 뛰어넘어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사랑을 실천한 사랑의 어머니 테레사수녀에 대한 존경은 두고두고 역사속에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한 수백만 영국사람들의 애도행렬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영국왕실에 대한 분노의표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왕실의 부귀영화, 자유분방, 음욕이 어우러진 삶의 비극적 종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두 여인의 죽음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분명히 죽음은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사건이다.
테레사수녀와 다이애나의 죽음이 대서특필되는 가운데서도 알려져 있지 않은 죽임이 있다. 얼마전 서울 전농동에서 철거용역깡패와 공권력에 의해 방화살해된 박순덕 여인의 죽음이다. 지금도경희대의료원 영안실에는 어린 두 자녀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김영삼정부가 들어서서 오히려 노점상과 철거민에 대한 단속과 탄압이 심해졌고 그 과정에서 여러명의 죽임이 발생했다. 그러나이러한 억울한 죽음은 철저하게 은폐되었고 생존권 투쟁과 탄압이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어떻게 보면 우리의 역사는 죽임의 역사였다. 광주항쟁에서의 수많은 죽임,아직도 밝혀지지 않은의문사, 박종철과 이한열, 강경대의 죽음은 바로 우리사회의 민주와 진보를 위한 밑거름이었으며산 제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군부독재시절만 하더라도 공권력에 의한 죽임이 온 국민의 분노를불러일으켜 대중투쟁을 촉발시키고 지배권력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나 지금은 사실보도조차 되지않는다. 민생탄압과 인권탄압이 사라지지 않고 더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살면서도 이를 물리치려는 분노와 투쟁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은 단지 언론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었다거나 혹은 세계의 선진적 대열에 들어섰다거나 하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문제이든지 아니면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에 대한 철저한 불감증에 걸려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억압과 해방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말한다. 냉전구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질서와문명이 시작된다고도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러한가. 세계는 여전히 억압과 착취, 온갖 불평등구조가 심화되고 있고 획일화된 세계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 속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피폐화되고 있다. 우리사회는 더더욱 그러한 깊은 늪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반민주적인 악법이 도사리고 있고 반민중적인 탄압은 도처에서 번득이고 있다. 상당수의 시민은 소비향락적 분위기에 젖어 개인적 욕망의 덫에 걸려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언론은 우리의눈과 귀를 막고있다. 끊임없는 죽임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나 21세기라는 지배이데올로기의 환상속에서 민중들의 삶은 참담한 지경으로 피폐화되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 정권욕에 매달려 이합집산하는 보수정객들과 그 세력들에게 엄중하게 경고하는사회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고 가족공동체의 훈훈함을 맛보는 민족의 명절 추석을 며칠 앞두고 죽음에 대한 깊은 명상에 잠겨보는 것이 어떨까. 올바른 삶을 치열하게 살고, 오는 죽음을 우리는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유, 정의, 평등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모처럼의 긴 연휴에 먼저 간 열사들의 무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죽임의 역사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그들을 다시 한번 기려본다.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이낙연 "'줄탄핵·줄기각' 이재명 책임…민주당 사과없이 뭉개는 것 문화돼"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