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화제-장애인 부부

입력 1997-09-06 15:06:00

"시각장애인 신부.자원봉사자 신랑 백년가약"

"사랑앞에서 '장애'는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 권해선씨(40.대구시 달서구 상인동)는 6일 꿈에도 그리던 면사포를 썼다. 심한 당뇨로시력을 잃은지 6년. 홀머머니와 함께 12평 임대아파트에서 알뜰하게 살아온 자신을 완전히 짓뭉개버린 '맹인'이라는 굴레. 그러나 지금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나 부끄럽게느껴진다. 장애자인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겨주는 동반자를 찾았기 때문이다.권씨의 새삶을 개척해준 임경천씨(40.대구시 남구 대명동). 권씨는 재활교육을 받던 대구시 남일동 포도나무 맹인선교회의 자원봉사자로 있던 임씨를 1년전 만났다. 어려운 살림에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마흔이 되도록 장가도 못 간 사람. 그러나 건축공사장에서 미장일을 하면서도 짬만 나면 맹인들을 돕는 고운 마음씨가 권씨에게는 눈물겹도록 따뜻했다.

만난지 한달만에 '프로포즈'를 해 온 임씨. 권씨는 당뇨에다 눈까지 먼 자신을 사랑해주는 임씨가'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권씨는 임씨의 끈질긴 구애에 조금씩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했지만 결혼이 맹인인 자신에게 너무나 부담스런 행복이라고 느껴졌다.

당뇨로 쓰러진 지난 3월. 기절했다 일어나보니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을 잡고 기도를하고 있었다. 태산같이 꼿꼿하던 권씨의 마음도 더이상 머뭇거릴수만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인이란 것이 우리사이에 걸림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제 생애 처음으로사랑을 했으니까요"

하얀 면사포는 커녕 신랑의 얼굴도 볼 수 없었던 결혼식. 보이진 않았지만 가슴에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느낌보다 진한 감동이 젖어왔다. 식장에서 신랑의 손을 꼭 잡고 절대 남을 원망하지않고 감사하며 살겠노라고.

"앞은 못보지만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빛을 잃어버린 제앞에 새로운빛이 비치니까요" 권씨는 자신들의 만남을 있게 해 준 포도나무 맹인선교회와 예식장을 무료로빌려준 대구백화점 선교문화재단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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