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푸근함·싱싱한 특산물·가격도 '적당'"
사려는 이와 팔려는 이들의 흥정이 오가고, 멀고 가까운 고장의 먹거리, 입을 거리들이 한자리에모여드는 장(場)이 쇠락의 고비를 넘어서 지방 특산물도 사고, 사람냄새가 나는 푸근한 삶의 현장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날 따라 일주일 단위가 아니라 5일 단위로 살던 그 시절의 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기능뿐아니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나 친척들과 회포를 풀던 만남의 공간이자 지역사회의 문화를 옹골차게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안 숨가쁜 개발논리에 밀려 백화점이나 현대화 유통체인, 할인점 등 신업태에 밀리기만 하던 장이 느긋함과 여유를 찾으려는 현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우리네 생의 한가운데로 트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처럼 화려한 조명등과 깔끔한 포장지·세련된 매장도 없고, 찾아가기에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장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은 제철에 난 싱싱한 농수산물과 지방특산물을 푸짐하게살 수 있는데다 오가며 나들이길로도 그만이기 때문.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겸해 선산을 찾은 이들이 오사리 고추를 찾아 청송 영양장에 들러 1년 양념과 함께 고향의 푸근함까지 사가는가 하면, 살이 쫄쫄 찢어지는 양지머리 돈백이를 찾으려는주부들의 발길이 영천장, 하양장에 몰려들고 있다. 닭고기 맛 이 나는 간고등어로 집안 식구들의가을 입맛을 맞추기위해 서문시장 지하 어물전을 찾는 주부들의 얼굴에 편안함이 흐르고, 올해값이 다소 오를것이라는 소식에 미리 마늘을 사려는 아내를 태운 남편들은 의성장으로 운전대를돌린다.
신선들이 즐겼다던 단물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가 지천으로 깔린 청도장은 운문사 가는 길목이어서 좋고, 맥반석 물이 흘러 유난히 당도가 높은 경산 거봉포도를 사서 온천욕까지 하고 돌아오는휴일 오후의 가족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이외에도 제기를 목기에서 유기로 바꾸려는 사람들은 방짜유기로 유명한 김천장, 추석 제수용 나물을 구입하려면 백운산 자락의 청정 나물로 유명한 성주장에 들러도 좋겠다. 오징어가 많은 구룡포장에서 피데기 오징어를 구입해서 돌아와도 즐겁고, 새벽녘의 칠성시장 채소장은 싼값에 싱싱한 나물을 장만하기에 그저그만이다.
대구 경북권에서 서문시장 다음으로 큰 포항의 죽도어시장은 울릉도로 가는 관광객들뿐 아니라싱싱한 횟감을 싼값에 사려는 대구 경주 인근 도시사람들로 하루종일 붐빈다.
죽도시장은 새벽 동틀무렵이면 깨어나 해질녘까지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부두 바로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포항수협 공판장에서는 하루종일 딸랑딸랑 경매가 이어지고, 인근 바다에서 잡아올린 오징어 문어 전어 방어 가삼(가자미)등 활어들이 하루종일 거래된다. 죽도어시장을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근 소방도로 건너편 개풍약국 뒤쪽의 건어물 시장, 오뎅시장, 젓갈시장, 잡화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죽도시장은 새벽 6시부터 경매가 붙기 시작, 오전 9~10시경이면 피크를 이룬다. 하루 거래 물량은20~30t. 50여명의 경매사들이 막 경매를 끝내면 뻘건 고무 다라이에 끌고 나온 소매상들이나 난전아낙네들, 소비자들의 흥정이 시작된다. 툭하면 욕지거리가 오갈 정도로 거칠고 시끌벅적하지만밉지 않다.
23일 오전 8시, 횟거리용 신물 오징어 한상자(20마리)에 2만~2만3천원, 하루 잠잔 오징어는 8천원~1만원까지 값이 뚝 떨어진다. 성질이 급해 금방 죽어버리는 전어도 살아 퍼득이는게 한마리에 1천원, 난전 아줌마들이 그 자리에서 회를 쳐준다. 양식 우럭도 4~5마리에 1만원, 문어는 3만~4만원이면 웬만한 놈으로 고를수 있다.
울릉도를 드나드는 정기 여객선이 정박하는 포항여객터미널 근처에 서는 죽도어시장은 부산의 자갈치시장 마산의 어시장, 목포의 수산시장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몇번째에 드는 어시장으로서의구실을 충분히하는데 특히 문어 오징어는 강원도 경상도 일대의 어획량이 거의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래서 죽도시장의 물량에 따라 동해지역의 풍어와 흉어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던가. 죽도어시장의 명물은 회골목. 다른 포구에 견주어 많은 횟집(5백여개)에는 회덮밥 1만원, 물회 1만원이면 충분하다. 미리 회를 쳐놓고 한 접시에 5천원~1만원에 파는 집들도 많다. 고급스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포구에 온 기분을 십분 살릴 수 있다.
죽도시장은 부두와 마주 위치해있는 수협 공판장, 어시장이 송도다리 네거리까지 이어지고, 길 건너편에 위치한 건어물 시장 입구에는 꼬챙이에 꿰어말리는 피데기 오징어들이 장관을 이루는 가운데 멸치 미역 다시마 오징어 쥐치등을 싼값에 파는 건어물 시장이 50여개 늘어서있다. 건어물시장 끝쪽으로는 젓갈시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생미역줄기 다시마 곰피등을 썰어파는 도매상, 현지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어물을 이용한 오뎅가게, 게가게등이 죽도시장 번영회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냉동 문어가 대량 유통되고 있어 자칫하면 여름 문어를 살 우려도 없지않다. 여름 문어는 개도 안먹는다 던 속담이 아니더라도 살아 꿈틀대는 가을 문어사러 죽도시장에 들르는게 어떨까.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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