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열린 집이니 그냥 차나 한잔 하러 오세요"
살림도 프로지만 전문가 뺨치는 손재주에 끈기까지 갖춘 주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헐티재를 넘어 청도 각북면에 사는 주부 송선씨(47)를 만나러 갔다.
"소녀적부터 전원생활이 꿈이었어요"
앞마당에 삽사리 짖는 소리에 얼굴을 내민 송씨는 친정 어머니가 입던 모시한복을 물려입은 차림새로 감잎을 따서 금방 만든 다식과 차를 내놓고는 한사코 평범한 아낙네임을 강조, 취미생활에대한 취재를 꺼려했다.
한지공예가들도 많은데, 자신이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자세에서 순수함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음을 익히 짐작할 수 있지만 정작 그는 여느 한지공예가 못지않은 작업량과 수준,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다.
대구시 삼덕동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온지 약 일년, 극히 필요한 공산품과 육류를 제외하고는대부분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송씨는 동창이 밝을 무렵부터 오후 서너시까지 동네아주머니들과 함께 밭일을 한다.
멀리서보면 전원생활이 낭만이요, 정작 살려면 일더미에 묻힐 각오를 해야한다는 분명한 사실을싫다지않는 송씨는 일하는 즐거움을 어디다 비기랴던 선인들의 노래를 위안삼아 전원생활의 고단함을 이겨나간다.
도시생활에서는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찮아 밤을 낮삼아 다닌다지만 이곳 시골에서는 땅거미만내리면 사방과 단절된다. 그만큼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가야할 곳도 없는 자유시간이 보장된다.일찍 퇴근하는 남편(장원열씨, 한라건축사무소 대표이사)과 저녁 이후 차한잔을 즐기고나면 송씨의 취미생활은 꽃이 핀다. 마치 희랍인 조르바가 바닷가에서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 용해되어 있는 자아를 건져올리려는 열정으로 춤을 추듯이 그는 밤을 낮삼아 한지공예의 세계에 빠져든다."목단 무늬 혼수함 한개를 만드는데 한지 1백50쪽을 붙여야해요"
곧 결혼식을 올릴 친지의 자녀에게 선물할 혼수함을 만들고 있는 송씨의 작업량은 엄청나다. 이미 이런 혼수함을 60여개나 선물했지만, 그의 안목과 솜씨를 아는 모 화가가 상의도 없이 모 화랑에 개인전 일정을 잡아두었다고 통보했지만 단호하게 취소시켜버렸다. 누구에게 보이기위해 작품을 준비하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한지공예를 아는 이들은 직접 작품을 만드는게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통에 도저히 남한테 선물을 하지 못하겠다고 그러는데도 송씨는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골판지를 재단하고, 본드로 붙여서 밑지를 바르고 무늬를 자르고 색지를 붙이고 래커를 여러 겹 칠하기까지 수십번의 손이 가는한지공예품이 널따란 송씨의 작업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작업량이 많다고 대충 하지는 못한다.한지공예 약장을 만들고 있는 송씨는 올해로 결혼생활 21년째에 접어들었지만 그전에도 '손이 놀면 심심하다'면서 한복을 지어입고, 뜨개옷도 만들었다. 다식도 직접 만들고 앞마당의 대추를 따서 대추초도 만들고 하다보니 아직 사먹고 사입은게 별로 없다.
영남차회 동호인인 남편 장씨와 2층을 다실로 꾸며놓은 송씨는 아직 전시회 일정이니 그런 것은꿈도 꾸지 않지만 도란도란 대화를 곁들여 작업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이 생산한 수많은 한지공예품들이 언제나 세상밖으로 구경을 나올는가.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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