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떠도는 망향의 寃魂들"
오키나와의 현청 소재지 나하시에서 국도 331호선을 남쪽으로 달리면 유명한 항구도시 이토만시에 이른다. 이곳에서 조금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화려한 꽃들이 해풍에 흔들리는 아늑한 풍경과함께 완만한 바닷가 언덕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오키나와 전쟁 최후의 격전지로 유명한 마부니(摩文仁)언덕이다. 검게 빛나는 '평화의 초석'들이 태평양을 향해 도열해 있다. 이 초석에는 오키나와전쟁에서 숨진 23만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전쟁의 슬픈 상처를 상징하고 있다. 그중에는 올해 새로이 43명이 추가된 2백22명의 한반도 출신자의 이름도 각명돼 있다.
오키나와 현청의 부탁을 받은 한국의 명지대 홍종필교수는 유족찾기에 동분서주, 지난 6월 위령의 날 한국인들의 이름을 추가 각명했다. 홍교수는 유족들로부터 '지금와서 그런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같은 과실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많은 한국인의 유족을 찾아내 이름을 초석에 새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오키나와의 바른역사연구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평화의 초석은 조선인, 중국인 등 강제연행의 실태조사가 정확하게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족을 찾은 숫자도 극히 소수에 지나지않아 결과적으로 가해의 실태를 보여주는 것은 될 수 없었다"며 "각명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이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지역 역사연구가들은 섬으로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숫자는 적어도 1만명을 넘는다고 보고있다. 지역 역사연구가는 강제연행된 이들중 전쟁이 끝난후 가츠렌시마(勝連島)에 설치된 조선인 전용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의 수는 1천5백87명. 그렇다면 나머지 8천4백여명은 목숨을 잃었다는 결론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이 초석에 각명된 숫자는 겨우 0.6%%라는 것이다.일본인 작가 하야시 에다이는 '청산되지 않은 소화(昭和)'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오키나와로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의 고난의 기록을 말해주고 있다. 이 저서에 의하면 일부 조선인들은 비행장과특공정(艇)의 지하비밀기지를 만드는 공사에 동원됐다. 또한 인근 탄광으로 강제연행됐던 조선출신 광부들도 전원이 투입됐다. 이들은 대개가 진지구축, 탄약운반 등의 하역작업도 했다. 그러나식량 부족으로 밭작물을 훔치다가 일본군에 적발된 사람은 죽음을 당해 해변가에 매장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에 의하면 오키나와로 강제징용된 사람중 경상북도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약 3천명인데그중 경산(慶山)군 출신이 3백50명에 달했으며 이들중 살아서 돌아간 사람들이 지난 87년 향리인남천면 백합공원 중턱에 오키나와서 죽은 동료를 추도하는 위령비를 세웠다는 것.저자 하야시는 또 다른 일제의 만행을 기록하고 있다. 1944년12월 중국 대련(大連)에서 곡물을 싣고 규슈(九州)지방으로 가던 화물선이 표류, 오키나와 해변에 도착했다. 이배에는 조선인 선원 17명이 타고있었는데 일본군은 스파이혐의로 이들을 체포해 노동을 시켰다.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6월경 필요가 없게된 조선인들을 가노가와(鹿川)부근 동굴속에서 굶어 죽게했다. 전쟁이 끝나고주민들이 돌아와 보니 많은 유골들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밖에 미군들의 투항권고 방송을 듣고 동굴밖으로 나가는 조선인들을 향해 일본군 들이 뒤에서총으로 사살하기도 했고 군대위안부로 끌려왔던 조선여인들도 지하 참호속에서 목숨을 잃었다고증언하고 있다.
평화의 초석들이 도열해 있는 마부니 언덕 부근에는 오키나와 전쟁에서 죽은 한국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한국인 위령탑 '도 세워져 있다. 네모난 돌을 쌓아올려 봉분을 만들고 그앞에는 비석을세웠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태평양전쟁으로 이곳에 강제 징용된 1만여명의 한국 청년들은 무수한 고초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아깝게도 희생이 되고 말았다.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원혼은 파도 높은 이곳 허공을 떠돌며비되어 흩뿌리고 바람되어 불리라. 이 고독한 영혼을 위로코자 우리는 여기 한민족의 이름으로탑을 세우고 정성을 모아…중략'
최근들어 당시 오키나와까지 강제로 끌려와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이 그때의 현장을 다시 찾아 일본군에 의해 죽은 동료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행사도 간혹 열리고 있다.
그러나 위령비를 건립하고 추모제도 올려야 함은 당연한 도리이지만 지금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않고 있는 사망자 숫자와 신원 등 강제연행및 학살진상을 규명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점이 우리가 짊어져야할 오키나와에 대한 또 하나의 숙제이다.
〈도쿄·朴淳國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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