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빛이 되라'는 뜻에서 조양(朝陽)회관이라 합시다"
1922년 10월 30일. 독립운동가 서상일은 새 보금자리에 마지막 기왓장을 올렸다. 기뻤을까, 늦가을 그의 얼굴엔 땀 대신 눈물이 흘렀을까. 3·1 운동 이후 일본은 문화정치로 식민지통치방법을바꿨고 민족운동도 아울러 민족계몽운동과 신교육운동으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현 달성공원 정문앞에 개관한 조양회관은 7년동안 대구구락부, 대구운동협회, 대구여자청년회, 동아일보지국 등이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사용됐고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 됐다. 이를 내버려둘 수 없었던 일본에 의해 이후 대구부립도서관으로, 일본군 보급부대 주둔지로 징발, 광복 후에는 원화여교의 교무실겸도서관으로 쓰이더니 84년 대구시 재산으로 매입되기에 이르렀다.
광복회 대구·경북지부 입주
'조선의 빛'. 현재 주소는 동구 효목1동 산234 (망우공원 안). 압록강 둔치 낙엽송으로 짠 마루바닥, 75년 풍상을 견딘 붉은 벽돌까지 고스란히 옮겨와 다시 쌓았다. 87년부터 광복회 대구·경북지부가 입주, 광복회관으로 쓰고 있다는 점 외에는 변한 게 없다. 세월에 닳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관심.
"저기 저 빨간 벽돌집이요? 무슨 기업연수센터 같은 거 아닌가요?"
망우공원에 놀러나온 시민들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 입구에 '광복회'라는 안내판만 붙어있을 뿐이어서 코앞을 지나다녀도 '조양회관'을 알아보기 힘든 점도 있다. '조선의 빛'은 그 앞에 널린무궁화와 더불어 퇴색해 가는걸까.
건물로 들어가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내는 마루위를 조금만 걸으면 '대구경북 항일운동 사료전시실'이 나온다. 왕래가 없어 불도 켜놓지 않은 작은 방안에 '1943년 대구사범학생 사건에 관한대전지방법원의 예심 종결서', '3·1 운동 당시 대구시지역 주모자들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판결문' 등 문서자료와 '애국지사 김태련이 대구형무소 복역중(1919) 쓰던 밥그릇' 등 유품, 일제시대대구역·대구경찰서·안동형무소·항일운동가들의 사진 등 4백여점의 자료가 빼곡이 들어차 있다. 대부분 독립기념관 등에서 필름을 빌려와 제작한 복사품.
"원본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유족들이 좀처럼 내놓으려고 하지 않아서 말이죠" 광복회 대구경북지부장 김성권씨는 자료수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있는 자료의 보존상태를 충실히하고 전시공간도 더 확보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유서깊은 조양회관이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해 관리와 정부지원에 소홀한 점이 많습니다"
문서자료·유품 대부분 복사품
사방을 둘러싼 애국열사들의 사진에는 이름만 달랑 붙어있을 뿐 그 활동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약력이 나와있지 않다. 사료로서 가치가 높은 판결문도 유리진열장 밖에서 그나마 볼 수 있는 겉표지는 온통 한문이라 그 내용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국경일에는 예의 재미없는 TV 특집프로그램이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듯, 그나마 가꿔놓은 역사의 현장에서도 그 무성의가 '광복절 뜻 새기기'를 참으로 어렵게 만든다.
조양회관의 원적지인 달성공원 안에는 저항시인으로 이름 높은 이상화의 시비(詩碑)가 있다.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라고 적힌 돌덩어리의위치는 코끼리우리와 호랑이우리 사이. 누가 갖다 놓았는지 꽃다발 하나만 머쓱하게 놓인 비석은기념촬영배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코끼리, 호랑이보다도 인기가 없다. "엄마, 저것도 무덤이야?"갈길 바쁜 어머니는 시비를 가리키는 딸아이의 손을 말없이 잡아 끌었다. 시인이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보고' 싶어하던 '빼앗긴 들'은 되찾은지 오래지만, 주택과 상가가 야금야금 먹어버린 그땅에 '어머니 젖가슴같은' 보드라운 흙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역사의 현장 무심한 발길만
두류공원 2·28 기념탑 맞은편에도 세워진 상화 시비는 그래도 덜 외롭다. 고월 이장희, 빙허 현진건, 대구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항일운동을 편 백기만의 시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기 때문이다. 1901년 대구 남산동에서 출생한 백기만은 현진건, 이상화, 이상백과 더불어 문예지 '거화'를 발행했고 황석우와 함께 '조선시인회'의 이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넉넉한 벤치가 있어 그래도 여유롭다. 양각된 시인의 얼굴이 바라보고 있는 쪽을 향해 저마다 넋을 잃은 사람들은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참, 내일은 광복절이다.
〈申靑植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