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추락 참사 사고원인

입력 1997-08-08 00:00:00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는 생존자 구조가 마무리되고 환자수송 등 수습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됨에 따라 문제의 핵심인 사고원인 규명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기상악화, 조종사 실수, 공항 관제시설 고장, 기체결함 등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추측과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기체잔해에 대한 현장조사와 사고기에서 회수한 블랙박스해독이 끝나기 전에는 현 단계에서 누구도 사고원인을 자신있게 짚어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추락지점과 사고 당시의 기상조건, 공항시설의 정상가동 여부 등을 근거로 전문가들은 몇가지 추론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의 정황중 항공기 추락지점이 공항 전방 4.8㎞ 지점이었다는 점을 들어 항공기가 정상고도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 추락사고의 직접 원인이었을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문제는 항공기가 사고 당시 정상고도를 유지하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기가 터치 다운 준비에 들어가는 활주로 전방 7~8마일지점의 정상고도는1천8백피트(약 6백30m)~2천피트(약 6백96m)이고 사고기가 추락한 3마일 지점의 정상고도(GLIDEPATH)는 약 1천3백피트(약 4백m)다. 그러나 사고기는 이 고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낮은 고도로비행하다 추락지점 근처의 언덕에 충돌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그렇다면 사고기의 조종사는 이 지점에서 왜 정상고도를 유지하지 못했을까.

사고원인의 핵심인 이 부분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전문가들은 정상고도를 유지하지 못한 이유로 3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공항의 시설고장이나 기체결함, 둘째는 강력한 하강기류나 돌풍 등 순간적인 불가항력적기상악화, 셋째는 기체이상 조종사의 판단착오나 실수등이다.

그러나 이번 추락사고에는 막대한 배상과 사고 항공사의 이미지 문제, 제작업체의 신뢰 손상 등결코 양보할 수 없는 엄청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적어도 블랙박스 판독 등 최종적인 조사결과가 공개되기까지는 항공사와 사고기 제작업체, 공항측의'책임 떠넘기식' 공방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본다.

◇활공각 유도장치(Glide Slope) 고장

공항의 시설고장은 가장 많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활공각도를 지시해 주는 아가냐 공항의 GS(또는 GP)시설이 고장이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고 이 장치의 고장이 이번 참사의 간접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한항공과 괌 당국,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특히 당시 괌 아가냐공항의 착륙유도장치인 글라이드 슬로프를 이번 추락사고의 가장큰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사고기 조종사의 판단착오에서 비롯됐을것이라는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이 262편이 사고 당일 대한항공보다 20분 늦은 오후 8시40분 착륙할때 좌표고도를 입력, 활주로에 자동적으로 접근시키는 비행관리시스템(FMC)을 가동, 안전 착륙했다는 점이 대한항공의 이같은 주장의 설득력을 약하게 만들고있다.

◇공항관리체계

대한항공은 괌 아가냐공항의 공항관리와 활주로가 각기 민간과 정부가 분할, 관리하고 있어 항공기 안전에 지대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음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국제공항에 비해 안전관리의 전문성이 낮아 사고 가능성을 그만큼 높여주었고,글라이드 슬로프 고장도 이같은 관리상의 허점을 드러낸 것으로 대한항공은 주장하고 있다.◇불가항력적인 기상악화

하강기류나 돌풍 등 불가항력적인 기상악화는 블랙박스의 비행기록을 해독하면 곧 확인이 가능하며 관제탑에서도 공항 주변의 국지적이고 순간적인 기상변화를 모니터하고 있어 블랙박스 해독전이라도 공항당국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항공기 교체투입

대한항공이 통상적으로 A300기종이 투입되는 서울~괌 노선에 3백85석의 B747-300기종을 투입한데 대해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등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있다.

대한항공이 성수기 여행수요가 폭증하자 FMC 조차 부착되지 않은 B747-300기종을 무리하게 투입했고, 사고기종에 대한 조종사의 숙지 여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 NTSB의 입장이다. NTSB는이들 사실을 직접 파악하기 위해 서울에 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여행수요에 맞춰 항공기를 교체 투입하는 것은 항공사 고유의 신축적인 운영방침에 따른 것으로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조종사의 착오와 과로, 미숙

조종사의 판단착오나 실수는 사고기의 조종사 박용철(朴鏞喆·44)기장이 괌 노선을 이번 사고가나기 전에 8차례나 왕복한 중급 베테랑이라는 점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누구나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사고기의 조종사는 총 비행시간이 8천9백14시간이나 되고 사고기와 같은 기종의 비행시간도 1천7백시간이나 되는 대한항공의 표현에 따르면 '중급 베테랑'이다.같은 공항에 8번이나 왕복한 경험이 있는 조종사가 초보적인 실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고 항공기의 기체이상

사고기인 B747-300기종이 지난 84년 도입된 비교적 노후한 기종에 속해 기체 이상을 일으켰을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국내노선에 투입된 노후 항공기들이 잦은 회항소동을 일으킨 점도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미국 노스웨스트항공사의 경우 노후 항공기를 도입, 운영하는 바람에 기령이 평균18년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들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항공기의 경우 안전이 생명인 만큼 철저한 정비로 이같은 단점을 충분히 커버할수 있었다는게 대항항공의 주장이다.

또 사고기 제작사인 보잉사는 B747-100, 200, 300 등 747 시리즈의 경우 사고확률은 1백만분의 1로 지극히 낮다며 제작상의 문제점은 거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있다.

◇항공기의 무리한 운용

사고기는 사고 전날인 지난 4일 서울과 제주를 2번이나 왕복했고, 그날 밤 다시 미국 앵커리지로갔다가 5일 오후 2시30분께 김포로 돌아온뒤 다시 제주비행을 하고, 오후 7시27분에 귀경, 8시20분 괌으로 떠났다.

이 때문에 기체 정비 등에 소홀하지 않았겠느냐는게 전문가들의 의문이다. 실제로 기내청소와 기내식 비치 등에만 최소한 30분이 소요되는 점에 비추어볼때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정비를효과적으로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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