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탐사-문경새재

입력 1997-08-06 14:03:00

"조령산 자락의 식물" 식물을 만나는 일은 그 이름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식물도감을 펼쳐보았을때 목차에 나타나는그 다양한 이름들은 낭만적이고 소박한가 하면 천박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빛을 향하거나 알맞은 온도에서 꽃을 피우는 형태로 세상에 반응하고 원시적인 의사전달(?)을 하는 식물들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에 의해 그 이미지가 형성된다. 낭만적인 느낌의 달맞이꽃, 고향의 흙냄새를 연상케 하는 찔레꽃, 해학적이면서도 다소 고상하지 못한 개불알꽃, 중대가리 등등.식물조사를 맡은 송종석 안동대교수는 첫 답사길을 조령산(해발 1, 017m)쪽으로 잡았다. 새재 관문에서 좌측으로 비껴나 있는 이 산은 충북으로 난 포장도로를 가다 나타나는 이화령에서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송교수가 새재 관문 중심지역을 마다하고 이 곳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그가 지난해 가을 보았다는 자란초 군락지역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 자란초는 희귀식물로 환경부에 의해 보호대상종으로 지정돼 있다.

해발 7백20m의 이화령에서 시작되는 조령산 등산로는 크게 가파르지 않다. 7~8부 능선과 산줄기정상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이따금 오르막이 있긴 하나 대체로 평지를 걷는 것과 비슷했다. 조사팀은 조령산 정상까지는 가지 않고 이화령에서 조령산 사이 대략 3분의 1지점에 이르는 지역의식물을 살펴봤다.

달맞이꽃, 찔레꽃, 딱지꽃, 구름조개풀, 산딸기, 엉겅퀴, 망초, 꽃다지, 청가시덩굴등 숲 가장자리에흔히 보이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엉겅퀴는 60~1백cm의 높이에 거미줄같은 흰털이 촘촘히 나 있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6~7월에 피는 꽃은 적자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망초(높이 50~1백cm)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귀화식물로 길가나 밭, 공터, 산기슭등 어디에서나볼수 있으며 전체에 거센 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망초는 잡초화된 상태라고 볼수 있으며 개망초, 큰망초, 실망초도 비슷한 식물이다. 이중 큰망초와 실망초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달맞이꽃도 여기저기 피어있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인 이 2년초 식물 역시 강둑, 해변, 철도, 길가등 지천으로 널려있는 식물이다. 멋들어진 이름은 해질 무렵 꽃이 피고 해뜰 무렵 꽃이 지는 특징에서 비롯됐다.

이 식물들은 사람들이 사는 곳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이다. 외국이 원산지이면서 우리나라에들어온 귀화식물이 대부분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볼수 있을 정도로 희소가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수 없다. 이러한 식물들이 높이가 만만치않은 조령산 자락에 피어있는 것은 씨가 사람의 몸에 붙거나 바람에 날려 이곳에 떨어진뒤 퍼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로 입구에는 이화령휴게소가 있어 차량운전자들이나 인근 주민들이 짬을 내어 가볍게 산에 오르는가 하면 도로 건너편산등성이 군부대 막사와 산 자락 여기저기에 진지와 헬기장등이 설치돼 있어 사람의 왕래가 빈번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다.

이러한 식물 군락은 숲 가장자리 양지바른 곳에 형성된다. 키크고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들이 활개치는 숲에는 햇볕양이 적어 살기에 적당치 않다.

흔해 빠진 식물들 사이로 희귀한 자란초가 나타난다. 지난해 가을 자란초 몇 포기밖에 보지 못했다는 송교수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자란초가 여기 저기 피어 1백~2백포기이상은 되고도 남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희귀하다는 식물이 이렇듯 대량으로 서식하자 송교수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숲가 식물들을 뒤로 하고 숲으로 접어드니 굴참나무, 갈참나무들이 눈에 보인다. 참나무종류가 눈에 띈다는 것은 숲 형성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나무는 간간이 눈에 띌 뿐 참나무보다 수가 적다.

송교수는 우리나라의 산림은 대부분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옛날 산에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굼으로써 산림이 황폐화되고 그후 1차로 나타나는 것이 소나무, 이어 2차로 진행되는 것이참나무 군락이다. 소나무는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자라는 양수림이어서 나무가 하나둘 들어섬에 따라 햇볕양이 줄어들면 소나무는 참나무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이곳에는 굴참나무가 졸참나무보다 우세하다. 굴참나무는 졸참나무보다 햇볕을 많이 필요로 하고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졸참나무는 상대적으로 그늘지고 기름진 땅에서 자랄수 있다. 조령산줄기의 땅은 돌이 많아 거칠고 남사면을 이루어 햇볕을 많이 받는다. 키가 20m는 넘을듯하고 둘레가 70cm이상은 될듯한 굴참나무도 듬성듬성 서 있다. 이만한 크기로 미루어 수령이 1백년~1백50년이상은 족히 될 듯하다.

굴참나무와 졸참나무 사이로 신갈나무가 간간히 보인다. 신갈나무 역시 참나무과에 속하나 8백m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냉온대 식물이다. 조사팀 위치는 해발 8백m에 미치지는 않아 신갈나무가 드문 편이나 9백~1천1백m인 부봉, 조령산, 주흘산 정상 부근에는 신갈나무가 우세하게 서식할것이다.

송교수는 이 곳의 식생 상태는 숲 형성 초기의 소나무 군락을 막 벗어나면서 과거 화전과 벌채로 쑥대밭이 된 산에 의도적으로 나무를 심었던 2차림의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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