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시한부 자구기회 맞아

입력 1997-08-05 14:33:00

"채권은행단 2개월 부도유예 설정"

채권은행단이 김선홍회장 체제의 퇴진을 이유로 두차례나 무산시켰던 채권기관대표자회의가 4일부도유예기간 설정으로 일단 마무리됨에 따라 기아그룹은 김회장 체제하에서 시한부 자구기회를제공받았다.

이날 3번째 열리는 회의까지도 채권단의 입맛에 맞는 수준의 자구계획을 기아측이 제출하지 않음에 따라 한때는 부도유예협약 적용의 취소라는 극단적인 대책이 불가피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그러나 강경식 경제부총리, 김인호 경제수석과 채권규모가 가장 큰 제일은행의 유시열 행장과 산업은행의 김영태 총재가 이날 조찬회동을 가지면서 일단 '부도유예후 조건부 자금지원'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기아사태의 채권금융기관 대처방안을 선부도유예-후자금지원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채권단의 당초 입장은 재계 8위의 기아그룹을 실질적 부도사태로 추락시킨 김회장의 완전한 경영권포기 각서를 제출받기 전에는 2개월간의 부도유예를 해줄 수 없다는 것으로 이를 이유로 2차례나 회의를 무산시켰다.

그러나 채권단의 이같은 요구가 기아를 삼성에 인수시키려는 사전 각본설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기아측의 필사적인 반발을 초래했다.

결국 채권단은 두차례에 걸친 회의 연기를 불사하면서까지 김회장 체제의 퇴진을 시도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도유예기간을 설정하는 선에서 기아문제를 일단락지었다.채권단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더이상 기아사태를 불확실하게 방치함으로써 초래되는 국민경제의 혼란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우세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아 협력업체들의 연쇄부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판에 특정인사의 진퇴문제를 이유로 거대그룹의 향방을 불확실한 상태에 계속 놓아두는 것은 경제전반에 부작용만을 초래한다는견해가 무게를 얻은 것이다.

뿐만아니라 기아의 삼성인수를 위해 채권단이 '총대'를 맨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재계의 여론도채권단으로 하여금 부도유예기간을 설정해주도록 유도했다.

우여곡절끝에 기아그룹이 2개월간 부도발생의 걱정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주력계열사가 자력회생할 수 있을 지는 극히 미지수다.

채권단이 기아에 대한 자금지원 조건으로 여전히 △김회장 및 5개 주력사의 경영진 퇴진각서 △임금반납. 인원감축에 대한 노조의 동의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로서는 채권단의 이같은 요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아측은 2개월간만 부도유예를 해주면 자력으로 회생의 기반을 마련할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기아그룹의 한달 자금수요는 모기업인 기아자동차 6천억원 등을 포함해 1조원대에 달하지만 기이자동차만 해도 수출과 내수판매로 한달에 6천억원 가량의 자금이 들어오고 있고 나머지 계열사들도 매출액에 준하는 자금을 매월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달 31일 부동산매각 1차 설명회를 가진 이후 지금까지 9백74억원대의 부동산이 처분됐고 골프회원권과 업무용차량 등 기타자산 매각으로 2백48억원의 자금도 확보했다.기아자동차가 지난달 실시한 특별할인판매로 3천5백억원대의 매출대금이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회수되며 노조와 직원들의 구사기금 조성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기아의 자력회생 자신감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올들어 부실기업 및 부동산 매물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터에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부도위기를 전면 수습할 만큼 계열사를 처분하고 몸집을 충분히 줄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금융인은거의 없다.

기아그룹이 발행한 진성어음이나 해외법인들이 발행하는 수출환어음(D/A)에 대해 금융권이 할인을 안해 주면 자금난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오히려 지배적이다.특히 부도유예기간이 종료된 후 일시에 대출금 회수압력이 가중되면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주력사들중 어느 하나도 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부도유예기간중에도 추가자금지원에 목말라하는 기아측과 경영진의 사표제출을 요구하는채권단과의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