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할머니 반세기만에 귀국

입력 1997-08-04 15:06:00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반세기만에 밟으니 목이 멥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가족들을 꼭 찾아주세요"

한국인 종군위안부로 알려진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는 4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아리랑노래를 부르며 기억되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흰색 블라우스와 진청색 치마를 입은 훈 할머니는 이날 3시간여의 비행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기자들이 묻는 질문에 통역을 통해 또렷이 답변하는 등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훈 할머니는 '내 이름은 나미입니다. 혈육과 고향을 찾아주세요'라고 한글로 적힌 분홍색 마분지를 가방에서 꺼내들고 "불쌍히 여겨 가족들을 꼭 찾아달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이 호소문는 캄보디아에서 그동안 할머니를 돌봐준 프놈펜 주재 사업가 황기연(黃基淵)씨가 적어준 글을 보고 훈 할머니가 직접 썼다고 손녀 렉 시나씨(27)가 설명했다.

할머니는 또 고향의 바다와 산, 절 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 고향이 당초 추정된 인천일가능성이 매우 큰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아리랑 노래를 불러보라는 취재진의 요청을 받은 훈 할머니는 또렷한 발음으로 "아리랑 아리랑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까지만 부른 뒤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노래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출국장에서 훈 할머니는 환영 피켓과 꽃다발을 들고 마중나온 나눔의 터(원장 혜진 스님) 회원10여명으로부터 간단한 환영인사를 받은 뒤 건강진단을 받기 위해 미리 대기한 앰뷸런스를 타고인천 길병원으로 떠났다.

이날 훈 할머니의 방한에는 렉 시나, 잔니(19), 시눈양(17) 등 3명의 외손녀와 황기연씨의 친구 이광준씨(40), 통역 김유미양(15) 등 5명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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