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의 한총련

입력 1997-07-30 15:05:00

따가운 여름햇살이 서서히 잦아들던 29일 오후 7시. 경북대 인문대앞 잔디밭엔 1백여명의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임 이름은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청년학생의 밤'. 경북대 조국통일위원회가 구속자 돕기 기금마련을 위해 만든 행사였다.올들어 구속된 이 학교 학생은 모두 9명. 이 날 모임을 마련한 조통위의 위원장 이정찬씨(27·경북대 신문방송학과)도 구속 상태. 엎친데 덮친격으로 옥중에 있는 이위원장이 한총련 탈퇴각서를썼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후배들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한총련에 대한 비판은 수긍합니다. 하지만 방법상의 오류였을 뿐입니다. 공안당국이 한총련의 실수를 빌미로 전체를 와해시키려 한다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날 모임에 참석한 박모군(경북대 지리학과)은 분명하게 말했다.

5천원짜리 티켓을 팔아 마련한 이 날 행사. 문예패의 흥겨운 공연과 1백여명의 학생들이 질러대는 젊은 함성이 있었지만 맥빠진 분위기를 헤어나지는 못했다. 행사장 곁을 지나가는 많은 학생들의 냉담함 때문.

"시대가 변하는 것만큼 학생운동도 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생운동을 사랑하는 선배들에 대한도리죠. 후배들이 변화 노력을 게을리 할 때 선배들이 쌓아올린 학생운동의 전통은 사라지게 됩니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는 오모씨(30·여·정치외교학과 졸업생)의 충고였다.밤늦게까지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70, 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던 막걸리 대신 맥주가, '아침이슬'류의 애절한 민중가요 대신 신나는 노래가 학생들 곁을 지키고 있었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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