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기 맞아야 할 국회의원들

입력 1997-07-28 00:00:00

텅빈 의자들.

탁상위에는 주인없는 명패만이 댕그러니 놓여있다.

지난주부터 대정부 질의를 벌이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의 썰렁한 모습이 찍힌 신문 사진의 한 장 면이다. 국회의원들의 빈 의석이 카메라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어제 오늘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국회 개회중에 자리를 비우는 것 쯤은 이제 일상적인 정도를 넘어서 당연한 일인 것처럼 면역 이 붙어 버렸다.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최소한의 염치도 보이지 않는다. 의사정족수의 5분의1도 못채워 사람오기를 기다렸다가 의사봉을 두드려야 하는 국회. 언제부터 나라일에 몸담은 공인 (公人)들이 이처럼 국사(國事)의 일터를 예사로 비워도 그만인 못 된 관행이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역사를 되돌아봐도 우리의 옛공직 풍토는 공인이 규율없이 자리 를 비우거나 사사롭게 딴일을 함으로써 국사를 무성의하게 지체시킬 정도로 불충(不忠)하지는 않 았었다.

조선조만해도 공직자들이 무단결근을 하면 태형(笞刑)10대로 다스렸었다. 그것이 국법이었다. 무 단 조퇴나 지각은 태형 50대로 결근보다 더 엄하게 치죄했다. 세종대왕이 결근보다 지각 뗘霽 더 엄히 다룬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하셨다지만 성종때까지도 고쳐진 흔적이 없는걸 보면 조퇴나 지각 같은 해이한 복무자세를 오히려 더 나쁘게 여길만큼 철두철미한 공인정신을 중시했음을 엿볼수 있다.

이번 국회로 치면 잠깐 얼굴만 내밀어 출근 한뒤 정족수만 채우고는 금방 빠져나가는 조퇴 가 더 질나쁜 태형감이라는 얘기가 된다. 개회 첫날부터 2백99명 의원중 단67명만이 대정부 질의를 한 우리국회의 집단 결근과 무더기 조퇴야 말로 고비용 저효율 의 표본이었다. 그들보다 절반도 안되는 월급을 받는 저비용계층인 말단공무원 냇汰竗근로자들을 보라. 무단결근은 고사하고 집안 에 아이가 병이 나도 꼬박꼬박 외출 결재를 받아야만 고양이 낮잠잘만한 시간이나마 자리를 비울 수 있다.

사회전체가 아래 위 다 그렇게 짜여져 각자 삶터를 충실히 지키며 굴러가고 있는데 유독 국회만 은 딴 세상처럼 돌아간다. 더욱이 의석을 비우고 다른 자리에 나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한심스럽 고 낯부끄럽다. 여당 대통령후보 부인에게 영부인 운운하며 아첨이나 떨고 다닐 시간은 있어도 국회에 꼬박꼬박 나가 깊이있는 질의할 시간은 없는듯한 사람들이 아직도 개혁당하지 않고 오히 려 더 목에 힘주며 살아가는 세상은 아무래도 거꾸로 가는 세상이다. 더구나 잇단 재벌그룹의 도산여파가 전 지역의 경제를 난타하고 불바다 전쟁론을 경고한 망명인 사의 충고가 아직 귀에 쟁쟁한 난국의 시기에 대정부 질의조차 의석을 텅텅비워놓은채 변죽만 울 리고 있는 모습은 결코 선진의회라 할 수 없다. 거창하고 위대한 일을 해달라고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자기 명패가 놓인 자리를 지키는 의회국가의 원초적 의무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 보라.

출석률 20~25%로 본회의나 상임위 정족수를 채웠다고 우기는 것도 억지다. 동네 계모임에도 그 런 경우는 없다. 20%로 선을 그으면 80%는 해이해지게 돼있다. 그런 의석 비율도 관행이어서 그 랬다면 그것부터 스스로 개혁해야 옳다. 의회의 개혁은 몇몇 미운털 박인 의원 개인의 선별적인 정치적 단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낡은 관행과 구조적 모순, 비민주적 요소를 바꾸고 깨나 가는 데서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진다.

국회운용의 큰 흐름은 젖혀두고 빈 의석시비만 따지는 것이 사소한 트집이랄지도 모르지만 볼기 를 벗겨놓고 태형을 맞아야할 의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정은 느슨해지고 국민들만 고달파지니 까 민초의 빈자리 시비도 겸허히 들어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궐석 국회의원을 보셨더라면 아마 볼기 1백대는 족히 치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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