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박정희 망령

입력 1997-07-18 14:15:00

"오세철〈연세대교수·경영학〉"

박정희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호도에서 단연 선두에 오르고 심지어 복제인간희망순위에서도 세계적 인물과 버금가고 있다. 심지어 신한국당 경선후보들의 박정희 칭송과 흉내내기는 눈뜨고 못볼 정도다. 군부쿠데타의 원흉이요 반민주독재체제의 악독함이 역사 속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독재자를 추앙하는 집단히스테리의 출현은 이 총체적 난국의 시대에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해 왔거나 진정한 민주화를 염원하는 대다수 뜻있는 국민들은 파시즘의 대중심리가 확산되지 않을까하고 경계하고 있으며 보수반동으로의 회귀를 획책하는 반민주보수세력의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더구나 이른바, 문민정부라고 하는 김영삼 정부와 그에협력했던 개혁(?)세력이 보여준 비도덕성과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진정한민주개혁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 실천보다는 실망과 자조에 빠지거나 김영삼정권에 대한 비판을유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박정희망령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민주와 진보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보수세력의 음모와 책동에 있다. 일제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 반민주쿠데타세력의 탄압을 경제성장으로 비호하는 이데올로기 조작의 역사,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각종 비리의 원천이었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무지 등이 결합되어 보수반동의 5·16쿠데타세력을 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망령을 여론으로조작하는 보수언론, 무능한 김영삼정권에 대한 비판과 혐오를 악용하여 반격을 꾀하는 수구 정치세력이 바로 장본인이다. 일본군 장교출신인 박정희는 반민족적 뿌리를 태생적으로 지녔으며,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전개된 과도기적 역사상황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정당화시켰으며 그후30년 동안의 군부독재의 단초가 되었다.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자유와 인권탄압을 일삼았으며 경제성장을 내세워 빈부격차를 구조화시키고 노동자와 민중탄압을 정권유지의 도구로 삼았다.지역감정을 고착화시키는 편중된 지역개발, 사상논쟁을 통한 호남지역의 볼모만들기 등 우리사회의 모순구조를 심화시켜 박정희와 그 세력을 찬양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에 편승한다면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올바른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지녀야 할 청소년들에게 청산해야 할 인물과 세력을 미화의 상징으로 조작한다면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암담한 보수의 나락으로빠지게 할것이다.

박정희망령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거짓과 민주와 개혁을 주창한 김영삼정권에 있다. 보수세력에게 빌미를 주고 민주와 진보를 김영삼정권과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부정부패의 비리가 마치 민주세력의 무능함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진정한 개혁의 실종, 노동법·안기부법의 날치기통과, 한보사태와 김현철 비리, 대선자금의 미공개, 노동자·민중에 대한 지속적 탄압,진보세력에 대한 공안탄압 등은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구조화시켰던 모순이 한꺼번에 중첩되어 표출되는 징표로써, 87년 6월항쟁에 이은 7·8·9월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를 계승하기는 커녕 오히려 군사독제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권력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영삼정권의 이러한본질과 한계 역시 박정희와 그후 이어진 군부독재의 부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민주와 진보를 향한 끊임없는 전진이 가로막히고 사이비 개혁세력과 보수수구세력에 의해 변질된다면 민주화운동은 다시한번 힘차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역사발전이 군부독재세력에 의해서도 사이비 개혁세력에 의해서도, 이룩될 수 없음을 우리는 값비싼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 배웠다. 이제 그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민심과 진심은 바로 진정한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독점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부패하고 부도덕한 보수정치세력이 지배하는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의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양심적인 정치가나 기업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환상으로부터 깨어나야 한다. 보수언론이 현란하게 조작하는 이데올로기 조작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박정희망령과 민간정부의 껍데기 개혁으로는 이 사회를 살릴 수 없다. 망령이 두려워 김영삼정권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것을 주저할 필요도 없다. 이 총체적 난국에 다시 한번 민주의역사를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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