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의 암자들

입력 1997-07-03 14:25:00

"고승대덕 자취 서린 작은 도량들" 7월이다. 지루한 장마. 인파를 피해 기껏 도심을 빠져나와도 피서객들의 틈바구니에 끼고 마는 계절. 어디 절간같이 한적한 곳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절간'이 '한적한 곳'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은 지났다. 그래도 눈을 돌리면 큰 사찰의 주변에 아직 때가 덜 탄 자그마한 암자들이 곳곳에보인다. 큰 절이라야 큰 은혜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중생들의 어리석음. 경남 양산 통도사는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이 불보사찰도 자장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비롯됐고 불교사에 큰 획을 그린 경봉스님이 대오(大悟)한 곳도 영축산 서북 자락 극락암이기 때문이다.북대구IC에서 불과 1백10km길. 도를 통하는 절 통도사 암자들에 이르는 길에 올라보자.오른쪽으로 보이는 통도사 일주문을 과감히 지나쳐 갈림길 왼쪽을 택하면 사명암이다. 사명대사를 비롯, 고승대덕들이 통도사와 밀양 표충사를 오가던 길에 이곳에 들러 팍팍해진 다리를 두드렸으리라. 한여름에 핀 민들레며 도라지 개망초 원추리를 구경하며 암자로 드는 다리를 건너다보면 1백마리는 족히 넘을 비단잉어떼가 인기척을 느끼고 몰려온다. 작은 암자라 선방을 제하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과 산신할아버지가 있는 칠성각이 고작. 제법 굵어진 단풍나무를 앞에 세우고 '무작정(無作亭)'이란 편액을 내건 정자가 눈에 띈다. "동원스님이 16년전 처음 주지로 오셨을 때 무작정 짓기 시작했다고 해서 '무작정'이 됐지요. '지음이 없다'는 뜻인데 모든 '업'은 '행위'에서 비롯되기 마련이거든요" 잉어밥을 주며 혼자 절간을 지키고 있던 도선스님(29)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우물가를 청소하다가 발견했지요" 엄지손가락만한 화병에 올망졸망 담긴 까치수염꽃. 사명암도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다.

사명암에서 서운암까지는 한걸음. 이번에 입구에서 이방인을 반기는 것은 1백여개의 장독대다. 아가리를 벌린 놈, 엎어진 놈, 명찰을 단 놈…. "암자에서 먹는 장을 담그는 것들인데 사람들이 내다 버린 독을 전국에서 주워모은 겁니다" 서운암주변 4만평 감나무밭을 갈다 나온 명덕스님의 설명이다. 복분자(산딸기)간장, 라복자(무씨)된장, 감식초…. 모두 약초 삶은 물에 담근 것들이라 장이라기보다 약에 가깝다. 입구 이정표에 적혀있는 것처럼 서운암의 대웅전은 3천개의 불상을 모신 '삼천불전'. 과거·현재·미래 각 1천불씩으로 부처의 연속성과 중생의 바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의 규모에 걸맞게 서운암에서는 해인사팔만대장경을 '자기'로 재현하는 '도자팔만대장경'조판작업을 지난 91년부터 시작했다. 산문 바깥에 지은 임시건물에 이미 16만장(자기에는 양면에 장경을 새길 수 없다)의 장경판이 지난달 드디어 초벌구이를 끝내고 재벌구이를 위해대기중이다. 막 완성품이 나오기 시작한 '도자팔만대장경'작업은 2000년도에 끝날 전망이다.서운암에서 내려오다 극락암과의 갈림길에서 서축암쪽으로 꺾으면 통도사보다 더 유서깊은 자장암이 나온다.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왕15년(646)에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에 머물며 수도하던 암자.암벽에 기댄 형상으로 자리잡은 법당 오른쪽에는 19세기에 조성했다는 마애불상이 서 있다. 관음전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법당 뒤쪽 암벽에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한 금와공이 있고 이 금개구리는 불심지극한 불자에게 모습을 나타낸다"는 내용이적혀 있다.

산행의 마지막 코스로는 극락암이 적당하다. 마침 15주기 행사가 한창인 경봉스님(1892~1982)이득도한 삼소굴(三笑窟)이 있는 곳.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통도사 산문에서부터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베어내려고 하자 경봉스님이 달려가 '출입하는 불자들의 반감을 사기 쉬우니 정상에서부터베어내려오라'고 했지요. 일인들이 이에 수긍하고 조선인들은 경봉스님을 못마땅해했지만 나무를운반할 신작로를 먼저 닦는 동안 해방이 오고서야 사람들은 그 뜻을 알게 됐습니다" 극락암 스님들에게 영축산 솔숲이 유난히 울창한 내력을 들어도 좋다. 유난히 크게 그려진 십우도(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상징하는 소를 쫓아 가는 그림)를 좇아 대웅전을 돌아도 좋을 것이다. 산문을 나서기 전에는 약수터옆 바위에 경봉스님이 새겨놓은 글귀를 마음속에 새겨도 보자.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길을 찾아 쉬지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것은 물이다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가 찹고

낙동강 물이 넓으니 물빛이 푸르도다

미소할 뿐.

〈申靑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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