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미화원 김우년씨의 '건강한 삶'

입력 1997-06-28 14:57:00

전직은 실업계여고 상업부기 교사, 현직은 경력 14년의 베테랑(?) 구두미화원인 김우년(金祐年·40)씨의 별난 인생살이는 짜증 폭염을 가르는 한줄기 장대비에 비유된다.

언제나 당당한 직업관과 용수철 처럼 튀는 의욕적인 삶에다, 절망해 고개숙인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의리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지난 80년, 당시 안동 BBS자활원 총무이던 부친이 작고하면서 그자리를 맡아 보게 된것이 별난 인생의 시작이었다.

구두닦이 소년이 원생의 대부분 이었던 터라 그들을 관리하고 먹여 살리기위해 같이 구두통을 들었고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 고아나 결손가정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이 먹고 자고, 약간의 학비를 마련할수 있었던 손쉬운 일이 구두닦이 였습니다"

그렇게 거쳐간 원생들만 수백명. 대부분이 현재 지역에서 가정을 꾸리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잡은 것이 김씨의 제일 가는 보람이다.

우리의 1인당 소득이 1만달러 시대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복잡다단한 사회한켠엔 언제나 불우이웃이 있기 마련. 김씨는 오늘 당장의 '꺼리'가 모자라도 지역서 일어나는 각종 모금운동에 참여, 익명으로 성금을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두닦이 왕초" "남의 일에 정신나간 사람"등 구설에도 올랐지만 그의 내면을 아는 사람들은 색깔있는 삶을 사는 보기드문 "모범 보통시민"이라고 말한다.

"배를 곯아 구두통을 잡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 질 정도로 우리생활이 풍족해졌는데도 세상이 이토록 혼란스럽고 야박해지는 것은 정직함과 소신 없이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자승자박 이지요" 김씨는 "큰아들(10)이 방학하면 싫어하더라도 자신의 구두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키겠다"며 웃었다.

〈안동· 鄭敬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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