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전주한일신학대교수·철학〉"
보카치오, 볼테르, 괴테, 모파상, 플로베르, 보들레르, 톨스토이, 오스카 와일드, 에밀 졸라, 막심 고리키, 로맹 롤랑,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에머슨, 휘트먼, 마크 트웨인, 앙드레 지드, 서머싯트몸, 헤르만 헤세, D.H, 로렌스?
독자들은 웬 난데 없는 명부냐고 의아해 할 것이다. 물론 문학에 문외한인 독자들의 귀에도 익은서양의 유명작가들이다. 이들을 앞세운 뜻은 잠시 시론(時論)의 품위를 접어두고라도, 퀴즈 하나를 내볼까 해서다. "앞서 열거한 색목인(色目人) 작가들과 대구출신의 작가 장정일 사이의 공통점을 무었일까?"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13세기 서구의 타락한 기성윤리와 제도를 비판하고 육체의 정당한 욕망을 긍정한 작품으로 근대소설의 선구로까지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던 오랜 세월동안 금서로 묶여있었고,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여러나라에서는 '음란서적'이라는이유로 그 번역과 유통이 원천봉쇄된 바 있다.
서양의 경우, 상상과 사상의 자유를 금압한 역사는 최소한 태양과 신을 혼동하고 있던 동시대인들을 계몽시킨 죄로 피소(被訴)당한 아낙사고라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가 태양을 축으로 우주공간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남보다 먼저 알아낸 죄를 범한 것은 유명한 갈릴레오였다.종교적 특권계급의 원전(原典)이었던 성서를 감히 영어로 번역함으로써 그 오의(奧義)를 평민들의수중에 놀아나게 한 것은 틴달(W.Tyndale)이었고, 그는 그 죄값으로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천생의 기지와 필력으로 당대의 권력사들을 풍자한 글 때문에 투옥되고, 분서(焚書)처분속의 체포령을피해 망명과 은신을 반복한 것은 희대의 천재 볼테르였다. 1762년 교육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루소의 '에밀'도 역시 분서의 운명을 맞았고, 저자는 망명의 불안과 유랑의 고독속에서 말년을 보낸다.
공동체의 그물망 속에 얽혀서 함께 살아가는 개인의 활동이 무한정한 자유가 허용될 수는 없다.모듬살이에는 길과 원칙이 당연하고, 이는 사람살이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민주적 공동체의 오래된 이념인 생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에서도 존중되어야 할 기본임에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과 그 표현은 가령 교통법규 준수나 민방위훈련 참석률과는 달리창의성이 그 요체라는 데 있다. 불법주차 딱지나 벌과금 고지서는 법규 위반자나 훈련 불참자를계도할 수 있겠지만 생각과 표현의 일방적·제도적 억압은 생각 그 자체의 생명력을 쉽게 죽인다. 따라서 창작물을 두고 모듬살이의 길과 원칙을 적용할 때에는 극도로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장발단속의 구태도 이제는 한 때의 삽화가 되고 말았지만, 장발을 단속하느라고 참수(斬首)하는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겠는가.
19세기 이전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인쇄하고 배포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말미에 이른 지금은 허구적 창작을 이유로 그 작가를 구속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인지(人智)의 성숙이 베푼 관후(寬厚)함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우리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 장정일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당했다. 판사는 그가 '개전의정'을 보이지 않는다고 불쾌해 하는 모양이다. 내 생각에는, 장정일이 개전의 정을 보일 필요는없을 듯하다. 내가 읽은 역사의 교훈에 따르면, 아마도, 멀지 않아 그 판사의 개전의 정을 보일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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