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파문의 소용돌이 속에 지난 3월 신한국당의 대표직에서 낙마한 이홍구(李洪九) 신한국당고문이 18일 경선전에 본격 돌입하기도 전에 경선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무욕(無慾)론에서 대표직을 수행하며 이것이 다소 변질돼 유욕(有慾)으로 바뀌었다 다시 무욕으로돌아간 것이다.
이고문의 출마포기는 김윤환(金潤煥)고문이 지난 3일 출마포기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출마의사가 없었던 점을 생각하면 예비주자들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다. 이고문의 포기선언은 지금까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 진전이 없는 예비후보들에게는 상당한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칫 "물만 흐리고 선택에 혼선을 주기만 한다"는 비난도 우려되기 때문이다.그의 포기선언은 또 다른 한편으로 정책대결이라는 고차원적 접근이 후진성이 강한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부질없는 짓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지역감정에 기초한 지역대결과 머릿수 채우기로 대변되는 세몰이가 압도하는 정치현장에서 정책대결 구호는 대답없는 메아리에 불과했음을보여준 것이다.
이고문의 경선출마 결심에서 포기선언까지는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이뤄졌다. 지난해말 우여곡절속에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기습처리할 때까지만 해도 이고문은 여권내 가장 강력한 대선예비후보였다. 김대통령의 지원을 업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몰락은의외로 빨리 그리고 급속하게 찾아 왔다.
노동법파문은 여권내에서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그는 '대표선수'로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청와대의 의지대로 잘 따라줬지만 결과는 책임지고 자리를 떠나는 선택이었다.그 순간 그는 가장 강력한 예비주자의 반열에서 세력과 기반이 가장 미미한 세력을 가진 군소후보로 전락했다. 이고문은 이후 체질상으로도 맞지 않는 세몰이 대신 학자출신답게 정책대결을 선택했다.
하지만 정치현실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과 언론들까지 정책보다는 머릿수 헤아리기에 더 관심을 보여 그의 정치실험은 실패임이 점차 입증돼 갔다. 세몰이는 그렇다치고 여론조사도 그를 낙담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는 대표직에 있을 당시 즉 김심이 다소 실린 듯할 때 7%%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것을 끝으로 점차 낮아져 최근에는 1%%전후의 최하위로 밀리는 수모를 맛보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단히 실망스런 결과"라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이를 전후해서 그의 주변에서는 사퇴론이 고개를 들었다. 여론조사 결과나 세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꿋꿋하게 버티며 이번 경선을 새로운 정치시대를 위한 실험으로 생각했던 그 역시주변의 권유와 충고를 외면할 수 없었다. 15일에 있었던 대책회의에서 일부측근의 강경론도 없지 않았지만 그의 낙담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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