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요-마하티르 자존심 싸움

입력 1997-06-14 14:37:00

올초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현 수석장관)의 '실언'으로 촉발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자존심 싸움이 제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지난 1월 이 전 총리는 이웃 말레이시아의 조호르주를 "총격사건과 강도, 차량절도로 악명높은곳"이라고 비하해 말레이시아가 사회·문화교류를 중단하는 등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악화일로로치달았다. 이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이 전 총리가 지난 3월 긴급 사과성명을 발표, 사태가 수습되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가의 반발을 사고 있는 미얀마의 내달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가입을 앞두고 양국간의 묵은 감정이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싱가포르 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지난달 23일자 사설에서 인권을 탄압하는 미얀마 군사정부를강력히 비난했다. 미얀마를 비롯, 캄보디아, 라오스 3국의 아세안 가입을 확정짓기 위해 아세안외무장관들이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만나기 불과 8일전의 일이었다.싱가포르정부의 비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이 사설에 크게 당황한 말레이시아에서는 "미얀마와 광범위한 경제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싱가포르의 위선적인 태도가 아닐수 없다"는 비난이쏟아졌다.

결국 싱가포르는 '찬성'쪽으로 손을 들었지만, 양국간의 감정싸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안 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싱가포르 민간단체들이 태국과 인도네시아로 단체관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2편의 만화를 게재, 불화를 부채질했다. 하나는 이 전 총리가 해외로 관광을 떠나는 싱가포르인들에게 콘돔을 나눠주는 장면. 다른 하나는 그가 귀국한 싱가포르인들에게 에이즈 검사를 하는 모습이다.

이 만화는 즉각적인 반격을 받았다. 하지만 불만을 토해낸 것은 싱가포르가 아니라 태국이었다.태국이 섹스관광과 에이즈 천국으로 통하는데 강한 거부감을 보인 한 태국 관리는 "싱가포르와말레이시아의 싸움에 끼어 괜한 피해를 입었다"고 불평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두나라의 오랜 반목과 지도자간의 경쟁의식이 작용했다는 분석도있다. 한때 말레이시아 영토였던 싱가포르는 독립후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의 6배를 웃도는 고속성장을 이룩, 말레이시아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 또 멀티미디어 슈퍼회랑계획 등을 통해정보·하이테크 중심지인 싱가포르를 능가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이전 총리의 견제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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