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사이버뱅크 국내 첫 개발"
96년2월23일 제39기 정기주총에서 홍희흠행장이 용퇴하고 대은금융경제연구소 회장으로 자리를옮김에 따라 서덕규 전무이사가 2년의 잔여임기를 채우는 제7대 은행장으로 취임했다.9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내경기의 침체와 지역경제의 구조적 불황국면은 지방은행의 경영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96년말 우리나라의 OECD 가입으로 국내 금융산업은 밀려오는 개방과변화의 파고라는 힘겨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어려운 시기 대구은행의 사령탑을 맡은 서행장은 내실을 바탕으로 안정성장을 기본목표로 한 '신경영방침'을 내놓았다. 양질의 수신고 확보로 조달비용 상승을 억제하고 총량 위주 경영에서손익위주 경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골자.
그런 가운데에서도 96년7월 대구은행은 자본금 1백억원 규모의 자회사 '대은파이낸스'를 설립한데 이어 97년4월 광주은행 등 4개 지방은행 공동으로 납입자본금 1백억원 규모의 '미래선물(주)'을 설립, 7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소금융그룹으로 면모를 갖추게 됐다.
대구은행은 96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미국 톰슨 뱅크워치사로부터 장기자금 차입부문에서 A-등급을 받았으며 무디스사로부터도 국내은행중 최우수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전산화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로 대구은행의 성가가 높아진 것도 이 시기였다. 94년 지역종합정보서비스 '메아리'를 구축한 대구은행은 천리안의 우수 사이트로 이름나 있는 'DBI경제정보'를 제공한데 이어, 96년 11월에는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PC를 이용해 실제은행 창구와 유사한 3차원가상현실 기법을 이용한 '사이버뱅크'를 개발했다.
96년에는 대구시 금고업무 재계약을 앞두고 대동은행과 격돌하게 됐다. 치열한 경쟁 끝에 대구은행은 재계약하는데 성공했으나 상수도 특별회계를 대동은행에 이관하는등 부분적으로 조정하는선에서 마무리됐다.
서행장 취임 첫해 대구은행은 총수신고가 전년도에 비해 25.4%% 증가했으며 업무이익도 전년도보다 2백23억원이 늘어난 1천5백71억원을 기록, 12년동안 지방은행 선두자리를 지키며, 창립30주년의 해인 97년을 맞게됐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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