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들-가출·접대부 강요

입력 1997-05-30 15:21:00

학교 앞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교마다 '일진회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며 몸을 떨었다. '일진회(一陣會)'란 중고등학교에 널리 퍼져있는'잘나가는 아이들'의 모임. 특히 여중에는 대다수 학교에 일진회가 구성돼 있다.

이들은 학교 안팎에서 동료나 또래 학생들을 폭행하고 돈과 물건을 뺏는다. 세를 과시하기 위해때로는 다른 학교의 일진들과 패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싸움만 잘한다고 일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선배 일진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가출과비행 횟수에 따라 지위가 달라진다. 일진들의 대표는 '장군'으로 통한다.

수성구 한 여중의 장군 박모양(15)은 인근 고등학교 정모군(16)을'애인'으로두고 있다. 박양이 학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정군이 처리한다. 수성구 모폭력조직의 행동대원을 자처하는 정군은 박양의 '해결사'인 셈이다.

박양은 이번 학기 초 인근 모여중의 장군과 ㄱ고등학교 뒷산에서 '맞다이'(1대1 대결)를 치고 상대를 제압한 뒤 일대 조직의 순위를 뒤바꿨다.

남부정류장 부근에 있는 상당수 술집은 여중생인줄 뻔히 알면서도 쉽게 출입을 허용한다는 게 일진들의 설명이다. 보통 여중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술집 출입이 바로 일진들의 '무게'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학교 일진회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오모양(14)은 지난4월말 대항세력을 만들려다 일진들에게들켜 노래방으로 끌려가 1시간동안 감금, 폭행당했다. 치과와의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던 오양은한달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선배의 꾐에 빠지거나, 선배들의 강요에 못이겨 집을 나온 여중생들이 유흥업소로 흘러갑니다" 오양의 얘기다.

가출여학생들의 유흥업소 진출은 '학생마담뚜'의 역할에 달린다. 여중생이 가출하면 소위 '언니'라는 중퇴생들이 이들의 피신을 돕고 잠자리를 제공한다. 외부 폭력배 연계도 여기서 이뤄진다.가출한 여고생 일진 이모양(17)은 부모가 찾아오기전까지 가출여중생들을 데리고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는 친구집(남구 봉덕동)에서 집단 생활을 했다.

달서구 모여중 최모양(15)은 학교 일진들에게 '행동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수시로 폭행당하다 이들의 강요로 두차례 가출했다. 보다못한 부모는 최양을 친척이 살고있는 부산으로 전학보냈다. 그래도 걱정이 된 최양 어머니는 아예 딸과 함께 부산에서 생활한다.

학교 안팎에서 돈, 옷, 신발을 빼앗기는 학생들의 숫자는 상상을 넘어선다. 대구YWCA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 조사결과 학교주변에서 금품을 빼앗기거나 폭력을 당했다는 학생이 절반에 이르렀다. 수성구 모여중 2학년 한 학급은 학교 일진들에게 피해 본 숫자만 반장을 비롯해 수십명이었다.

부모를 속이는 아이들, 피해를 당하고도 털어놓을 데가 없는 아이들, 자기 자식만 감싸려드는 부모들. 이 속에서 학교폭력은 더욱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金在璥·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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