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차돌에 바람이 들면…

입력 1997-05-28 00:00:00

"최창국 〈정치2부장〉"

청대(淸代)의 이야기다.

11세 꼬마인 서유자(徐儒子)가 태원(太原)에 있는 곽임종(郭林宗)의 집에 도착했을때 주인인 곽(郭)은 마침 사람을 시켜 마당복판에 있는 멀쩡한 나무를 베려 하고 있었다.

크고 좋은 나무를 왜 베려 하느냐는 꼬마의 질문에 곽의 대답은 이러했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려 모르는구나. 이 마당의 사면엔 모두 집이 있지 않느냐, 마치 그 모양이 입구(口)와 같다. 자연히 그 안에 목(木)이 있는 형국이니 그건 바로 곤핍할곤(困)가 되지 않느냐. 그러니 내 당장 저불길한 나무를 베어낼 밖에 달리 도리가 있겠느냐?"

얘기를 다 듣고 난 꼬마는 즉각 다시 물었다.

"선생의 말씀대로 사면의 집을 입구(口)자라 한다면 그 집안에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건 바로 가둘수(囚)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결국 감옥에 갇히자는 얘긴데 어떻게 이 집에서 살 수 있습니까?"

대선자금 진퇴양난

엄연히 있는 현실을 억지로 외면하려 한 곽이 대꾸를 잃었음은 당연하다.

청와대와 여권이 보기싫은 대선자금이란 나무를 마당에서 싹둑 잘라 내려다 도처에서 수많은 서유자를 만나 진퇴양난의 형국을 맞고 있다.

불과 사흘전, 당초의 '김대통령 입장표명'을 '입장표명 백지화'로 잡아 떼려다 여론에 밀려 다시'입장표명(30일)'으로 번복하려는 모습을 지금 국민들은 보고있다. 여권 의사결정 과정의 진면목과 상황예측력의 바닥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자료가 없어 대선자금을 밝힐 수 없다는 김대통령의 말과 "대통령이 자료가 없으니 못 밝힌다고 하더라"고 말을 옮기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여당대표의 말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얼마나 모멸을 느꼈을까.

국정표류 이제 끝내야

당초부터 국민일반은 물론 야당까지도 대선자금의 내용을 끝단위까지 상세하게 밝히라고 요구한건 아니었다.

최소한 구체적인 숫자까진 못 밝히더라도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수긍할 수 있도록 모금과정, 사용내역, 잉여금 정도라도 대통령이 직접 밝히고 새로운 정치문화의 정착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란 것이 국민들의 마음일 게다.

아니 할 말로 자료가 있다고 한들 대통령이 직접 밝힐 것으로 믿는 국민들도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없다고해도 못 밝히리라고 믿는 국민도 없다는 사실을 이 정부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아닌게 아니라 다섯달동안이나 계속돼 온 국정의 표류를 염려해 대선자금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일반이 더 절실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과거 선거자금 모금의 관행과 행태를 국민들에게 보고하는 과정조차 못 밝히겠다고 버티고 다른 사람을 시켜 자료가 없으니 어떻게 할거냐고 하는건 이른바 문민정부의 국정책임자가 취할 자세는 아닌듯 하다.

국민앞에 진솔해야

집권당 사무총장이 한국의 정당들은 선거를 치르고 나면 자금관계 자료는 여야 구분없이 폐기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지만 92년 대선을 치르고 난 후 불법 자금조성 명목으로 사법처리당한 정주영 국민당후보는 무슨 자료로 벌을 받았는지 밝히면 어떨까.

문민정부의 특징중 하나는 정치를 전술개념에서만 보는 것 같다. 대야관계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대선자금 공개문제는 그 대상이 야당이 아닌 국민들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삼십리를 날아 간다고 했다.

국민앞에 정성스럽지도 않고 진솔하지도 않는 문민정부를 선택한 유권자들은 정권이 말기에 이른지금까지도 표찍은 손으로 눈을 가려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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