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에 목숨 빼앗긴 아버지들

입력 1997-05-24 14:57:00

"여보, 또 일을 저질렀소"

22일 오후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ㅇ아파트에서 안방 장롱에 목을 매 숨진 이모씨(48). 포커도박빚 1억원을 갚지 못한 이씨는 부인에게 용서를 비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버스운전기사이던 그는 도박에 빠져 들기 전엔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심심풀이로 손을 댄 고스톱에 이어포커판에까지 휩쓸렸고 도박빚 때문에 직장마저 잃었다. 도박판을 전전하다 지난해 말엔 부인 몰래 아파트를 저당잡혀 3천여만원을 빚진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구청 기능직 공무원 정모씨(49). 자신이 진 노름빚 9천여만원을 갚으려 서울대를 휴학하고 과외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21일 아파트에서 극약을 먹고 숨졌다. 정씨는 유서에 "포커 도박판에서 수천만원씩 빚을 진 사람이 많다. 돈을 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적었다. 가족들은 정씨가 전문 사기도박단에 걸려 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와 같이 도박을 한 동료들은 "정씨가 1천만원당 이자가 매달 1백만원에 이르는 사채를 써 도박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고 밝혔다.

재미삼아 시작한 도박에 빠져 이씨와 정씨는 목숨까지 잃었고 가족들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이들을 도박판에 빠지게 한 것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와전문사기단의 검은 손.

명예퇴직에다 부권상실로 직장과 가정 어느 한곳에도 마음 붙일 데가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한보사태와 대통령 아들의 구속 등 어수선하기만 한 세상을 지켜보며 생긴 허탈감까지 겹쳐 아버지들은 도박의 늪에 쉽게 빠져 들고 있다. 아버지들이 신바람 나게 사는 세상은 언제쯤일까.〈李大現기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