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입력 1997-05-16 00:00:00

현철씨가 검찰에 재소환되던 날은 마침 스승의 날이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애써 평상심을 유지하며 여느날보다 훨씬 바쁜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손명순여사는 '애타는 모정'을 숨길수 없어청와대내에 마련한 은사초청행사에 불참하고 말았다. 이화여대 은사 이성규옹(85)과 마산여고 은사 서국선옹(75)은 호스티스없는 게스트로 쓸쓸한 스승의 날을 맞은 셈이 됐다.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현철씨의 소환을 지켜보니 십팔사략에 나오는 은나라의 탕왕(湯王)얘기가 언뜻 생각난다. 7년 가뭄이 계속되자 탕왕은 상복을 입고 하늘에 기도했다. 그 기도는 하늘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자신을 향한 채찍질이었다. 후세는 그것을 '자책(自責)의 육사(六事)'라 부른다. ①정치는 바로했는가 ②백성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주었는가 ③호화롭게 살며 국고를 낭비하지 않았는가 ④후궁의 여자며 자식이 설치지 않았는가 ⑤뇌물이 횡행하지 않았는가 ⑥간신들의 고자질을 믿고 그릇된 인사를 하지 않았는가등이 육사의 요약이다. 이 자책의 육사를 현정권에 대입해보니 무엇하나비껴가는게 없어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취임초기에 칼국수를 먹으며 사정을 통한 개혁을단행할때 국민들은 '살맛나는 세상'이 오는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권력의 핵주변에는 옛 조선조때처럼 호의호식하며 나라를 말아먹은 간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구속을 눈앞에 두고있는 현철씨도 어쩌면 핵주변에 우굴거리고 있는 간신들이 빚어낸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간신은 예외없이 혼군(昏君) 즉 어리석은 임금이 만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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