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공사 못가린 안기부장 처신

입력 1997-05-10 14:37:00

권영해(權寧海) 안기부장이 김현철(金賢哲)씨와 김기섭(金己燮)씨를 호텔 빌라에서 만났다는 것은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권부(權府)의 하나인 안기부의 책임자가 국가적 비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김현철씨를 3시간씩이나 극비회동한 것은 그 경위가 어떤것이든간에 안기부장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 할 만하다. 권(權)부장은 나중에 회동사실을 시인하고 "내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했으며 수사방해나 외압을 위한 협의나 제안은 일체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보와 현철의혹, 대선자금 의혹규명등이 얽히고 설킨 민감한 시점에 국가 정보의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안기부장의 이같은 회동을 두고 권부장 자신의 말처럼 '단순한 위로의 모임'으로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설령 권부장이 아무런 사심없이 평소 친분이 있는 현철씨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하더라도 지금처럼 민감한 시점을 피하는 것이 책임있는 공직자로서의 도리였다. 그런데도 국정개입과이권개입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장본인을 만난것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한다하더라도 '오얏나무아래서 갓을 고쳐 썼다'는 오해를 면키 어렵다 할 것이다.

더구나 김기섭씨라면 현철씨와 유착,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해임된 권부장 휘하 사람이다. 권부장의 입장에서는 지휘, 감독의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마저 느껴야될 입장의 인물이다.그런데도 이들과 회동했다는 것은 자칫 권부장 스스로가 '현철 의혹'의 일부분으로 휩쓸려 들 가능성마저 터놨다고 볼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항간에는 현철의혹과 대선자금 의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외압을 받고 있고 현철씨 측근 인사인 이성호(李晟豪)씨의 귀국 지연도 사건을 축소 은폐하기 위한 것이란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런 판국에 이루어진 극비회동인 만큼 이번 회동이 검찰 수뇌부에 '대선자금과 한보의혹등에 대한 수사범위의 축소를 종용'하고 '앞으로의 대응책 마련을 위한 모임'이었다는 야당 주장을 덮어놓고 일축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안기부장이라면 막중한 국가공직이다. 이런 공직자가 아무리 대통령 아들이라지만 중대한 국정상의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있는 시점에 예사롭게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공사분별에 문제가 있는 행위로 볼수도 있다. 그런만큼 우리는 이번 만남의 전말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의 국정운영에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권영해부장의 앞으로의 처신에 우리는 주목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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