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세풍'

입력 1997-05-01 14:20:00

"'한보사태' 내탓이요"

우리들에게 한보청문회는 차라리 고통이었다.

불을 보듯 환한 사안을 두고도 끝내 몸체는 밝히지 못한채 우물쭈물이니 우리는 정의를 지킬 의욕도 능력도 없는 백성이란 말인가.

문민시대(文民時代)란 말이 차라리 부끄럽다. 비리를 따지는 청문회면 그것이 어떤것이든 참석자들은 약간의 정의감이나마 갖고 얼마쯤은 분노가 표출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는 그런 열기조차 없었다.

**한통속 한보청문회

특위의원들의 모습은 정치자금을 조달해야만 했던 동료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 씀씀이였지 비리를캐내려는 자의 신랄함은 아예 없었다. 이야말로 정치권 전체가 돈 앞에는 결백하지 못하다고, 그래서 무기력 할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바로 그런 꼴이었다. 어쩌다 우리정치가 이꼴이됐을까.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정경유착의 비리를 경험하고 있다. 3공(共)시절 4대의혹 사건을 비롯, 최근의 수서(水西)비리에 이르기까지 정경(政經)이 한 통속이 된 비리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역대정권은 정치자금 조달이란 명분으로 서슴없이 흑책질을 자행했지만 우리들은 지금껏 한번도 명쾌히 그 연유를 밝힌 적이 없었다. 아니 그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마련된 선거 술 얻어 먹고 표 던져온지 수십년이다.

그 결과 정치권에는 어떤 파렴치한 일을 저질러도 막대한 자금을 뿌리고 여론만 잘 조종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막된 생각을 가진 사람조차 없지 않게 됐다.

봉투 좋아하고 선거 술 좋아하는 선거분위기가 계속되는동안 후보의 경륜보다 정치자금이 돋보이는 정치판이 그만 돼버린 것이다.

여당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요즘도 당내 중진들이 8룡(龍)이니 하면서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되기위해 안달인 것도 따져보면 아무리 실정(失政)을 거듭해도 돈과 공조직(公組織)만 있으면 당선된다는 망상에서 비롯됐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술한잔에 票팔았으니

결국 오늘날의 이 엉터리 정치판을 길러낸 토양은 다른데 있는게 아니라 내탓이오.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그동안 술 몇잔 봉투 한두개 받은 대가로 이번 한보청문회에서 보았던 저처럼 무력한 국회의원들을 양산해 놓은게 아닐까. 우리 정치구조는 한마디로 먹기 좋아하고 연줄 찾아 '빽'달기 좋아하는 민초들의 표심(票心)과 오랜 세월 권력을 독점해 온 보스중심(3김중심)의 경직된정치체제가 맞닥뜨려 만들어낸 산물일성 싶다.

3김(金)씨는 지난 30여년동안 가장 중요한 정치 기능인 당(黨)공천권과 정치자금을 장악, 대권(大權)도전 3수(修), 4수를 하는 동안 돈에 너무나 허약한 정치풍토를 조성했고 그 결과가 이번 한보청문회에서 그대로 드러난게 아닌가 싶다. 우리 정치가 이처럼 표류하는 데는 하향식(下向式)보스중심의 경직된 정치체제에 절반의 책임이 있다면 나머지 절반은 한잔 술에 쉽게 한표 던져온 바로 '내탓'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정치판 정화도 民草의 몫

우리는 걸핏하면 우리 정치의 폐단을 정치인 탓으로만 돌린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백성이 깨어있지 않는데 정치인이 알아서 스스로 돈 안먹고 청렴해질리 만무 아닌가.

설령 깨우친 정치인이 있더라도 지금같은 정치풍토에서는 낙선되기 십상이니 개혁할 엄두도 못낸다.

따라서 이제 우리 정치 풍토를 정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우리들 민초들 뿐임을 자각할 때가된것이다.

앞으로는 누구든 돈을 앞세우는 정치인은 거들떠 보지도 말자. 그렇게 해야 참신하고 그릇 큰 인재들이 정치권에 모여들어 새 정치를 시작할 빌미를 잡을수 있다.

또 그렇게 해야 이번의 한보 사태 같은 볼썽 사나운 꼴 다시 안 볼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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