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전주한일 신학대 교수·철학〉"
방송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97년 춘계 TV 프로그램 정기분석 결과에 따르면, KBS 1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공영방송이 아예 오락전문채널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주시청 시간대에서 오락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이 73.8%%(KBS 2), 67%%(MBC), 그리고 73.8(SBS)에 이른다는 보도다. 특히그 내용은 상투적인 드라마와 코미디물, 그리고 쇼프로그램 일색이라는 것이다.*위세 더해가는 영상매체
활자매체에 대한 영상매체의 우세를 진단하고 강화하는 추세가 유행이 되고 있는 지금, 대중적영상매체로서의 TV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날로 그 위세를 더하고 있다. 그 파급효과는 대사회적타당성이나 정당성과 상관없이 이미 나름의 견고한 문화권과 공론장(公論場)을 형성하고 있으며,대중사회의 여론과 삶의 태도, 처세관과 가치관을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에 자기성찰과비판에 느린 일부 시청자들은 TV가 보여주는 허상에 자신의 생각과 모습, 그리고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철없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앎의 권리원천을 삶에 두려고 애쓰는 식자층이라면 우리 일상생활의 표층을 지배하고 있는이 TV담론, 혹은 그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가령 산업화과정을 주도했던개발독재 담론에 대하여 정예화된 학생, 노동자, 일부 유림(儒林)세력, 그리고 각성한종교인들이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대항담론을 생산함으로써 민주화-산업화라는 근대화의 양측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던 것은 좋은 범례가 될것이다.
*사고의 환각제 전락
이제 TV가 아침저녁으로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는 이미지는 이 경박한 정보사회의 이마골로기(imagology=image+ideology)로 유포되면서 이웃집 구멍가게 아저씨로부터 모모한 대학의 석학에이르는 전 국민의 행동과 사고 양식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신문방송학 교수의 논문이나 전문화된 매체비평의 영역에서만 지적되어야 할 고급한 문제가 아니다. TV의 놀라운 보급률과 시청률처럼, 이미 TV가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는 담론과 이미지들은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집요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령 TV시청시간의 절반을 교양서적을 읽는데 쓴다든지, 혹은 그 10분의1 정도만이라도 쪼개어서 하루 한번씩이라도 밤하늘의별을 쳐다보는데 투자하는 상상을 해볼 경우, 사태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물론 '바보상자'라는 고전적 이미지가 형성된 이래, TV에 대한 매체비판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그 비판은 일반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론화되지 못한 채 지식인 문화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 사이, TV는 상품논리와 거품유행을 퍼뜨리는 첨단의 장치로 나날이 세련되어 가고, 총체적 위기상황이라는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는 돌파구의 구실은 커녕 오히려 현실감과 역사의식을 마비시키는 환각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현실감각과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사회가 그 사회를 지탱시켜온 전통과의 창의적인대화를 통해서 공론을 형성하고, 그 공론의 요청으로 각 구성원의 어깨에 배당한 책임인 것이다.작금의 정치와 경제 행태에서 두드러지듯이, 우리 사회의 위기는 특히 이 책임의식이 실종된 것에 그 중요한 원인이 있다. 그리고 오늘도 습관처럼 TV채널을 돌리고 있는 시청자들은 이 실종의 사건에 TV가 깊숙이 관여해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실감각·역사의식을
TV를 보고 있으면 혹시 내가 중학생들만 사는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휩싸일 때가 적지 않다. TV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전해지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선 그것은우리 역사와 현실의 초점을 넘어서는 그림이어서는 곤란하다. 텔레비전과 괴뢰(傀儡)비전을 구별하는 잣대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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