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짧고 검찰은 길다

입력 1997-04-21 00:00:00

5천만원짜리 떡은 얼마만큼 클까. 도대체 한국의 떡값이 얼마나 비싸기에 수천만원에서 몇억되는 돈을 '떡값'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싶어 탑골공원 옆 떡골목엘 나가봤다. 찹쌀로 만든 인절미가 2백50개들이 한 상자에 5만원, 개당 2백원이다. 멥쌀로 만들었다는 작은 송 편은 3천원, 서른 예닐곱개가 들었다니까 개당 80원 남짓하다. 대충 계산해봐도 5천만원이면 인절 미가 25만개, 멥쌀 송편은 60만개를 살수 있다. 매일 백개씩 먹어치워도 16년이 걸린다. 한 개의 떡으로 붙여 만들면 길이 1만2천m짜리. 기네스북에 오를만큼 '롱-'떡이다. 그런 큰떡을 우리 국 회의원·정치인중에는 한입에 꿀꺽하고도 트림조차 않는다는 '위대(胃大)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신들은 정치인들이고 정치인이 받은 떡값은 정치자금이며 고로 떡값 먹은 그들은 무죄라는 논 리를 펴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가 받은 학부모님 봉투는 '교육자금'이고 교통경관이 어쩌다 면허증 밑에 끼워 받 은건 '교통지도자금'이며 기자들 촌지는 '취재자금'이니까 똑같이 무죄라야 된다는 논리인데 무슨 경우인지 그건 따로 계산하잔다.

힘없는 사람들은 단돈 만원만 받아도 세칭'재수없이'걸리면 정치인의 정치생명보다 결코 못잖은 공직자의 생명이 끝나는 칼날같은 세상에 같이 살면서도 그분들은 5천배가 넘는 큰떡 먹다가 '재 수없게' 리스트에 올라봤자 '정치자금!'한마디면 만사 끝아니냐는 투다. 먹은 떡이 크면 클수록 더 깨끗하고 정의라는 논리요 이왕 먹으려면 가급적 큰떡을 먹으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정 의와 양심이 그런 떡값 논리같은 비뚤어진 기준에서 농단되게 되면 역사는 고사하고 줄서기 질서 하나 바로 세워질수 없다.

지금 우리가 한보수사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유죄판결 같은 아픈 역사의 과정을 겪어가면서까지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거꾸로된 가치들과 모순된 관행과 구조에서 나온 부패의 잔재를 쓸 어내고 단죄함으로써 이번만은 무언가 제대로된 역사를 세워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민심에 눈뜬 검찰이 떡값정치의 곪은 환부를 도려내기 시작하고 사법부는 성 공한 쿠데타를 단죄했다. 그럼에도 아직'위대한'사람들중엔 '떡값은 무죄'라는 향수어린 관행의 논리에 매달린채 소환수사 조기 종결을 거론하고 국회의장 소환 조사는 검찰권 남용이라며 억지 를 부리고 있다. 국회가 쑥대밭이 된 지경인데도 아직 덜 깨었다는 증거다. 모순된 관행과 부패의 구조적 잔재를 이 기회에 쓸어내겠다는 의지 자체가 유독 그사람들에게만 없다는 소리다. 물론 정치인들에게도 할말은 있다. 검은 떡값 없이는 정치 그 자체를 운용해 갈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는데 우린들 어떡하라는 거냐는 항변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현실적 한계가 있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제도와 정치구조 개혁의 길을 찾아 내야 하는 의무도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쳐야 한다.

정치권이 덜깨인채 여전히 조기 수사종결과 외압을 시도할수록 더 깨어있어야 할 쪽은 바로 검찰 이다. 벌써 청와대로부터 수사외압이 내려왔다는 의혹이 담긴 메모까지 발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어렵게 잡아다 일단 망속에까지 넣어놓은 고기가 떡값논리로 다시 못속으로 되살아 들어가 도록 방관할지 도마위에까지 올려놓을지 여부는 검찰에게 자존심 그리고 용기와 명예심이 남아있 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지금 빼든 칼이 겨우 호박이나 찌르고 집어넣을 칼이라면 참으로 부끄럽고 허세에 찬 칼이 되고 만다.

인생과 예술처럼 청와대라는 권력은 짧고 '국민의 검찰'은 길어야 옳다. 검찰은 끝까지 용기를 가 지라.

金廷吉〈상무이사·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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