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대구중공업 최경훈씨

입력 1997-04-05 14:49:00

"산현장서 산다"

명예퇴직제 유행과 부도등으로 우리나라에서 직업을 잃는 사람은 하루 평균 1천4백명. 게다가 노동법이 바뀌어 정리해고제까지 도입된 마당이라 우리도 조만간 고실업(高失業) 시대를 맞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부장으로 정년퇴직한 사람이 화이트칼라에서 연봉제 블루칼라로 변신, 한 회사에 일하는 '만년 직장인'이 눈길을 끈다.

대구 서대구공단내 대구중공업 생산부에서 평사원으로 일하는 최경훈씨(64)의 최종 직책은 생산기술부장으로 신제품 개발의 총책임자. 물건을 만들고 부수는 것을 좋아해 "크면 대목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최씨가 중학을 졸업하자 마자 기계업에 뛰어들어 수십년만에 오른 자리였다.

그런 최씨가 지난 89년 정년을 맞자 최씨의 노하우와 기술을 아까워한 회사측이 재취업을 제의했다.

"부장으로 있다 평사원으로 변신, 데리고 있던 직원들과 함께 생산현장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는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진 기술을 알아주는 회사를 등질 수 없었죠"

최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선반의 '머리' 격인 트랫아세이를 조립하는 것. 평행-직각-진직도오차가 1천분의 5mm를 넘으면 안되는 매우 정밀한 부품이다. 하지만 기계를 손으로 한번 쓰다듬으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그에게는 식은 죽먹기. 스스로 고안해 만들어 공장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계만도 기어절삭 가공기, 호닝머신, 디폴더, 열처리기 등 무수하다.그간 최씨는 1남4녀중 딸 둘을 시집보냈고 재산도 살만큼은 장만했다. 연세대 음대 성악과에 다니다 독일 유학까지 갔다온 외아들은 국립오페라단 조감독까지 맡는등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돈 욕심 때문에 늙어서도 회사 다닌다 욕할까봐 조심스럽다" 는 최씨는 "나이 많다고 쓸모없는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런 최씨에게 '만년 직장인' 후배가 생겼다. 생산현장에서 함께 일하다 지난해 6월 정년을 맞은박용대씨(60)와 전정치씨(59)가 정년퇴직뒤 연봉제 사원으로 재입사 한 것.

명예퇴직, 정리해고가 '남의 일'인 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하겠다" 며 밝게 웃었다.〈崔在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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