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전주한일신학대 교수·철학〉"
복제에 관한 담론이 무성하다. 종전의 배세포 복제 단계를 뛰어넘는 체세포 복제기술이 가능해지고, 마침내 핵치환법에 의한 포유류의 복제가 현실화되었다. 생명논리를 무시한 상품논리의 전횡속에서 온갖 형태와 종류의 복제는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복제가 상품이 되는 사회에 들어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진단과 경고에 둘러싸인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이제 인간복제를향한 불온한 상상력마저 발동이 걸린 상태다. 인간복제의 가설은 복제시대의 한 정점을 시사한다.정보의 복제로부터 육질이 좋은 한우(韓牛)의 복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복제의 주체였던 인간이스스로 복제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복제시대의 한계를 스스로 앞당기고 그 창의성을 스스로 마감하는 짓에 해당한다.
*인간복제의 가능성
이 끝없는 복제의 시대, 특히 우리의 감성은 겹으로 위기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의사(擬似) 자극의 범람으로 느낌과 감성이 심각할 정도로 무디어지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자극과 반응은 서로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관계태(關係態)의 연계 '기능'이므로 한쪽이 기계화되거나 표준화되면 다른 쪽도 자연스러운 기능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극의 오용과 남용은 자연히 반응, 그리고 그 반응의 매우 인간적 형태인 감성의 오용과 남용으로이어지게 된다.
감성이란 인간의 몸이 이룩해놓은 가장 원형적 조건이다. 몸의 자연스러운 감성이 감당하지 못할정도의 자극의 오용이나 범람은 당연히 감성체계의 탄력있는 운동을 뒤흔들어 놓는다. 중용(中庸)에서, '누구나 음식을 먹지만 능히 그 맛을 아는 자는 드물다' '인불막음식야선능지미야(人不莫飮食也鮮能知味也)'라고 했던가. 고속복사, 무한복제의 시대, 감성은 그 내밀한 자율성을 잃어버린채 삶의 다양한 자극원(刺戟源)이 가진 고유한 맛을 잃어가고 있다.
*잃어가는 자율성
복제기술은 자극도(度)의 면에서도 유례가 없는 크기와 세기를 마음대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감성현실을 훼손시킬 수 있다. 인공의 기계장치와 그 일방적 조작은자연상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자극의 종류와 강도를 다투어 생산한다. 눈은 인공의 화상(畵像)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귀는 산사(山寺)의 적요함을 오히려 두려워할 정도로 변질해버렸고, 각종의 알레르기는 코를 떠나지 않고, 혀는 음식의 맛을 감별하기보다는 음식의 무게나 견디는 기능으로 전락하고, 우리의 창의는 온갖 기괴한 상상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심각한 사실은 이런 와중에서 인간성의 부드러운 주체인 감성마저 인공적으로 변형되거나 조작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감성의 고유한 맛과 멋은 소실되고, 인공적으로 디자인된 자극들이 범람함으로써 감성마저 상품화되고 기계화되는 것이다. 수많은 복제품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이제 인간 스스로의 복제를 상상하듯이, 감성을 위해 자극을 변형시키거나복제해온 행위의 끝에는 다름아닌 감성 그 자체의 복제와 상품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文化인가 文禍인가
우리 현대인의 감성은 내부의 자연적인 자율성을 상실한 채 외부의 여러 타율적인 체제에 순치(馴致)되어가고 있다. '나의 것 중의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밀한 느낌의 주체마저 나를 벗어나 표준화된 길을 쫓아다니면서 타자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감성현실이다. '표준'이 정해져서결국 복사가능한 형태로 바뀐 감성의 체계는 우리 감각의 진정성이나 자연스러움과는 무관하게저 혼자 굴러다니면서 나름의 인공화된 길 아닌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복제시대의 감성, 과연또다른 문화(文化)인가, 아니면 문화(文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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