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초대석-홍희흠 전대구은행장

입력 1997-03-26 15:40:00

지난해 2월 2년의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군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퇴임의 변을 남기고 홀연히 대구은행장직에서 물러난 홍희흠(洪憙欽·64)대은금융경제연구소회장.

능력있는 후진에게 길을 터주고 스스로의 건강과 또다른 삶의 보람을 찾기위해 용퇴의 결단을 내렸다는 홍회장의 귀거래사는 당시 우리 금융가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자리에 연연하는 오늘날의 세태에서는 보기드문 사례여서 상당기간동안 일부에서는 정치참여등다른 욕심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없지않았으나 퇴임후 약1년간의 행적을 보고서는 더이상 그의순수한 동기를 의심치않게 됐다.

퇴임당시 적신호를 보였던 건강도 이제 매우 좋아졌으며 지금은 만40년에 걸친 금융계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을 각계각층에 전하는 강연이 주된 일과로 자리잡고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홍회장이 강조하는 경영의 요체는 '협동'이다. 어쩌면 진부하게조차 들리는그의 경영관은 지역경제가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못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주목할만하다. 오랜경험과 관조의 입장에서 우러나온 경영관이기 때문이다.

"경영은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몸담고 있거나 이끌고 있는 조직, 지역사회에 애정과 신뢰를 가져야합니다. 힘은 억압을 통해서는 절대 모아지지 않습니다. 또 리더는 앞을 보는신념을 가지고 이를 실천에 옮겨야합니다" 홍회장은 신념없이 눈치를 보거나 정도(正道)를 벗어나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그의 경영관은 4년가까이 재임한 대구은행장 시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지난 92년임원 인사파동으로 불신과 갈등속에 휘말려있던 대구은행의 위기관리자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게된다.

조타수없이 표류하던 대구은행의 제6대행장으로 부임한이후 특유의 포용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강한 리더십을 발휘, 노조를 설득하는 한편 일일이 일선 영업점을 찾아다니며 직원들을 끌어안았다. 또 지역 기업인들과 잦은 만남을 통해 소원한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인사파동으로 얼룩진 은행 이미지를 회복시켰다.

그는 지역경제계에서 가장 먼저 경영혁신운동을 구체화시킨 경영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고있다.다른 은행보다 한발앞서 경영혁신운동을 추진, 재임기간중 외형성장은 물론 내실면에서도 괄목할만한 경영성과를 올렸다.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지역에서 특히 보수적인 은행의 경영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의 노력은94년 국내 전기업중 경영혁신운동을 가장 성공적으로 실시한 기업에 주어지는 한국능률협회 '경영혁신대상'을 받은데서 인정을 받고있다.

홍회장은 흔히 보스기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러면서도 여느 리더처럼 직위에서 오는 강압감이나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사람을 다루기보다는 상대방을 감탄케하는 정연한 논리와 철저한자기관리에 의한 솔선수범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이같은 리더십은 노사화합은 물론 활력과 일체감 넘치는 직장문화를 만들어가는 바탕이 됐다.그는 OECD가입에 따른 금융시장개방에 따라 일부 금융기관이 도산에까지 이르게되는 상황을 배제할수 없다며 금융계의 구조개편 움직임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국내 금융계의 대응태세가 전혀 안돼있는 상황이어서 관주도형으로 진행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현재 우리은행들이 딜레마에 빠져있는 신용대출 확대와 그에따른 부실여신증가문제는 극복여하에 따라 지역은행의 활로가 될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홍회장은 "신용대출은 신용없는 사람에게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신용있는 사람에게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는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지역은행의 장점인 우수한 지역 정보력과심사기법을 강화하면 절대 불가능한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즉 지역은행 최대무기인 지역밀착경영만 이뤄지면 지역사회의 골목골목 깊숙이 침투해 서울소재시중은행점포나 외국은행이 접근할수없는 기업정보를 가장 먼저 입수, 신용여신을 확대해 갈수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업체의 신기술 특수기술 개발과 보유실태, 경영자의 능력, 종업원의 의식실태등이 포함된 다양한 지역정보를 가지고있으면 신용대출이 부실로 이어지는 것을 극소화하면서 명실공히 지역 중심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받을수있다고 말했다. 또 지역은행의 존립이유도 여기서빛을 발할수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홍회장은 금융계후배들에게 '기본'에 충실하라고 충고한다. 30여년전 자신의 초임 은행원시절에는우리경제의 큰몫을 이끌고간다는 공직관과 자부심에 충만해 선배들로부터 그같은 신념이 없으면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요즘은 그때와 상황이 바뀌어 그같은 이야기를 강요할수는 없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기본'은 변하는것이 아니라는것. 변화의 와중에서 '기본'이 없으면 흐트러지기 쉽다는 때문이다.또 패기, 소신은 스스로 키워나가는것이라며 모든 일을 할때 부장이나 임원등 상급자의 입장, 즉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는것도 사고나 일의 폭을 넓힐수있는 계기가 된다고 충고했다.홍회장은 퇴임후 평소 읽지못했던 동양철학서적 독서와 다도등으로 모처럼의 여유시간을 즐기고있다.

지난88년 외환은행전무시절 철의 장막이 채걷히기도 전에 단신으로 구소련을 방문, 한소(韓蘇)간첫 환거래협정인 코레스계약을 성사시킨 홍회장은 최근 한-러 친선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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