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노동법(5)

입력 1997-03-24 15:00:00

"화합으로 풀자"

새 노동법의 적용을 두고 산업현장 곳곳에서 노사간 마찰이 불거지리란 전망은 어렵지 않다.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노조전임자임금지급금지 등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들이 대폭 명문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노사관계란 노사가 이를 어떻게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날 수 있다. 노사모두에게 '화합만이 불황을 딛고 살아남는 길'이라는 의식이 공유된다면 법규는 그다지 중요한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현장 곳곳을 둘러보면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새 노동법에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 정리해고제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직원 한 명이 아쉬운 판인데요"

대구 성서공단의 세원정공, 경북 영천의 세원물산, 경산의 센피코등 자동차부품공장 3개를 운영하고 있는 김문기사장(51)은 "정리해고제등 새노동법 적용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지난해 50억원으로 부실기업을 인수해 센피코를 만든데 이어 올 말이면 2백억원을 들여 충북 천안에 짓고 있는 세원테크가 준공될 예정이라 직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는 것.

세원의 고속 성장에는 노사화합이 큰 밑거름. 지난 94년 세원물산 임금협상때 회사측이 10%% 인상안을 내놓았으나 노조측은 3%% 인상안을 제시했다. 공장 이전비용이 대거 투입됐으므로 다음에 많이 올리자는 것이 노조의 뜻.

노조가 이처럼 회사를 감싸고 도는데는 이유가 있다. 임금이 동종업계에 비해 높은 수준인데다세원정공, 세원물산 할 것없이 공장이 마치 호텔처럼 깨끗한등 작업여건이 좋다. 세원정공 구내식당은 지난해말 개조돼 직원들이 '세원 레스토랑'이라고 자랑한다. "집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긴 직원들이므로 집 처럼만들어 줘야한다"는게 김사장의 평소 생각이다.

직원들은 '별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한다. 이런 형편이니 세원에 노사분규란 생각할 수 없다. 몇몇 직원들은 대기업이나 금융계에서 일하다 세원의 경영기법을 배우러 온 경우도 있다.

서대구공단의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대구중공업 화단에는 '노사는 하나, 품질은 기업의 생명'이란입간판이 서있다. 한때 부도 위기에 빠지자 직원들이 회사살리기 운동을 벌여 위기를 넘어선 것처럼 노사화합을 생명처럼 여긴다는 상징물 이다.

여인영사장(51)은 "대구중공업의 기업정신은 가족주의"라면서 "가족이 함께 벌어 함께 나누는데정리해고와 퇴직금 중간청산등이 왜 필요하느냐"고 되묻는다.노사분규가 없으므로 무노동무임금조항에도 관심이 없다. 임금협상은 평소 회사 사정을 공개한 탓에 2시간이면 보통 끝난다. 직원들의 불만은 사장과의 커피타임등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채널로 모두 해결한다.이러한 대구중공업 가족들은 요즘 정리해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꿈에 부풀어 있다. 미국 골든게이트 마이크로시스템사(GGM)와 공동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종이재단기를 개발, 세계 시장의60~70%%를 장악하고 있는 독일 폴라사를 견제한다는 꿈 이다.

"우리는 노동법을 몰라요. 회사에 출근하면 엔돌핀이 나오니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만 있으면 됩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