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먹는게 남는 것

입력 1997-03-21 14:16:00

사과가 다섯 개 있다. 철수가 세 개를 먹었다. 몇 개가 남았을까?

초등학생인 우리집 꼬마가 친구들에게서 주워 들어 밥상머리에서 낸 문제이다. 이런 유의 문제에는 함정이 있기 마련이라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안된다. 머리를 싸매고 궁리하지만 짜내고 짜내어답을 만들수록 꼬마에게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꼬마는 이런 문제로 제 부모를 놀려 먹는 재미를큰 낙으로 삼고 산다.

신통한 답을 못내고 항복하자 꼬마가 히히 웃으며 제시한 정답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꼬마의설명으로는 제 뱃속에 들어간 사과만이 확실히 남은 것이기 때문에 세 개가 정답이라는 것이다.요컨대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허튼 소리 말라고 입을 막고 말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초등학생들의 눈에 비친 오늘의 세태가 담겨 있다. 자기 손에 움켜쥐고 있지 않은 것은 언제, 어느 누가 채어갈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 무한경쟁의 현실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단 먼저 먹어 두어야 확실히 자기 것으로 남는다. 여기에는 무한경쟁과 자기중심의 논리만이 강조될 뿐 게임의 규칙과 공정성은 문제되지 않는다. 먹는것만이 남는 것이다.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부정하게 먹어치운 자가 게임의 규칙을 위반했다 하여 통째로 게워내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수많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독직사건으로 사법기관의 신세를졌지만 일시적으로 몸이 곤할 뿐, 잠시 지나면 몸으로 지킨 재산만 더욱 빛난다.이완용도 김형욱도 국가에 어떤 짓을 하였든 그들이 먹어치운 수백억대의 땅과 돈은 온전히 살아남는다. 역사교과서가 그들을 어떻게 패대기치든 그들의 자손은 그 땅과 돈이 자기들의 재산임을당당히 주장한다. 우리 법원도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 준다. 자본주의의 근간은 사유재산권의 보장에 있으며, 따라서 그 형성과정에 개재되는 천민성까지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하기야,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 속에서 벌이는 삶의 이전투구, 바로 그 자본주의의천민성이야말로 오늘날 자본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국가들을 능가하며 번영할 수 있는 활력의 원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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