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필름세계-데이비드 린 인도로 가는 길

입력 1997-03-11 14:25:00

최근 인도 알기가 붐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문제된 20세기초부터 그랬다. 오랫동안 영국식 중산계층을 비판했던 포스터는 위선적이고 상업적이며 가족 중심적인 영국을 싫어하여 성적 본능의 해방을 해탈의 방법으로 인식하는 인도를 동경했다. 서양은 동양을 신비화한다.특히 성적 해방의 땅으로 상상한다. '엠마뉴엘부인'보다는 노골적이지 않으나 포스터의 원작을 영화화한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오리엔탈리즘의 하나에 불과하다.그것은 작가가 초기에 빅토리아왕조의 도덕과 가치관에 반발하여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방문하고서 그리스 로마문화에 탐닉하는 것과 정신적인 구조를 같이한다. 이탈리아문화에의 탄상은 '전망좋은 방'에서, 그리스문화에의 추구는 '모리스'에서 절실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가 탐닉한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그렇듯이 그가 사랑한 인도도 고대정신의 그것이지 영국에 의해 식민화되었고그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는 인도가 아니었다.

이러한 작가의 심정은 '인도로 가는 길'의 주인공인 아델라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처녀인 아델라는 인도의 신비하기 짝이 없으며 기이하고도 비이성적인 세계에 매혹된다. 그녀는 인도에 근무하는 약혼자와 가까이 지내려고 왔으나 영국인들의 속물주의에 식상하여 인도의 진면목을 찾아 나선다. 인도의 신비에 대한 그녀의 몰입은, 어느 퇴락한 절에서 카마수트라 무늬가 파리먹이 사이로 기어디니는 것을 통한 신비한 성적인 상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거대한 원시의 동굴에서 동행한 안내인 인도 의사와 함께 이상한 사건에 말려든다. 아델라는 정신분열증을 보이고 인도의사는 강간범으로 기소된다. 여러 번의 재판을 거쳐 결국 그녀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나 그 심리과정은 매우 복잡하게 묘사된다.

이 작품은 동양과 서양, 인도와 영국의 대립과 어려운 정신적 대화를 상징하고 예언하면서도 그정치적 및 사회적 실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식민지의 비참한 상황도 인도독립을 위한 처참한 노력도 소설과 영화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오직 그는 그 자신의 인간관계에 대한 시각을 동서양의 교류문제에 응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루할 정도로 관념적이다. 데이비드 린의 그 전 작품들이 보여주는 박진감은 없고 명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스케일은 여전히 거대하나 노대가의 인생에 대한 조용한 관망이 영상을 지배할 뿐이지 관중을 사로잡는매력은 없다.

이 영화는 소위 동양적 신비주의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보라, 서양인들도 우리의 동양에 열광하지않느냐'하는 식의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와 같이 그것을 믿지 않는경우에는 서양인들이 조작한 동양적 신비주의의 허위의식을 조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수 없다.

〈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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