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나라음악의 사랑

입력 1997-03-07 14:06:00

군복무할때 1년동안 장교숙소의 같은 방을 썼던 K중위는 여복(女福)이 많은 친구였다. 일과 후에는 청춘사업하느라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 잘생기기도 했으려니와 인정이 많기도 했던 K중위는아무리 밤늦게 돌아와도 반드시 나를 깨워 '자니? 나왔어. 잘 자'라는 인사말을 건네고야 자는 버릇이 있었다. 저녁먹고 하릴없이 일찍 잠이나 자던 신세인 나는 그가 올때쯤이면 좋이 두세시간은 잔 셈이라 그의 인사말에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는 영 쉽지 않았다. 잘 자라는 그의 인사때문에 오히려 불면의 고통을 겪는 셈이었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신학기가 되었다. 학생들이 돌아온 캠퍼스에 다시 활기가 넘친다. 이런저런 동아리들이 벌이는 사물놀이 소리가 그러한 활기를 확인해 준다. 나이어린 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것에 대한애착을 몸 전체로 표현하는 현장을 보노라면 대견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내 나이 또래가 대학에 다닐때는 시간도 돈도 여유롭지 못한 탓에 우리것에 대한 애착은 있되 지금의 대학생들처럼체험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제 자리를 찾아야 빛이 나는 법. 돼지에게 금목걸이를 채워봐야 아름다울리 없다. 우리의 민중음악은 원래 확트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농사일에 힘든 서로를 격려하거나 마을축제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였던것이다.

오늘의 대학가에서 펼쳐지는 사물놀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체육대회에서는 흥을 돋우기 위해서, 데모등의 학생집회에서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일과 후에는 몇팀이 동시에 연습하느라 보통 시끄럽지가 않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며 무엇보다 조용해야할 곳이다. 사물놀이도 그 정당한맥락을 떠나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일 수 밖에 없다. 우리것에 대한 무분별한 사랑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막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음악을 사랑의 대상에서 혐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군복무 시절 K중위의 잘 자라는 인사가 그의 의도와는 달리 나에게 수많은 불면의 밤을 안겨주었던 것처럼.

〈경북대교수·고고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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