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총리 내정자는 누구인가

입력 1997-03-04 00:00:00

신임 고건(高建)총리 내정자는 관계, 정계, 학계를 두루 거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문민정부말년의 내각을 무리없이 이끌 '실무형 행정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고총리 내정자는 내무관료 출신으로 3공시절 전남지사, 최규하(崔圭夏)대통령 재직시 청와대정무수석, 5공시절 교통·농수산·내무장관등, 6공에서는 서울시장을 지내는 등 역대정권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85년 12대 국회에서는 고향인 전북 옥구에 민정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돼 87년에 도지부위원장을 맡는등 정치감각도 익혔다.

94년 서울시장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난뒤 행정부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명지대 총장으로 학교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 총리 낙점을 받았다.

고총리 내정자는 호남의 손꼽히는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일류학교를 다니며 순탄하게 성장했으며행정관료로서도 출세가도를 달려온 구김살 없고 관운좋은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경기중·고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뒤 지난 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 다음해에 내무관료로 관계에 진출한뒤 내무부 새마을담당관, 내무국장을 거쳐 75년에는 약관 37세의 나이로전남지사에 임명돼 최연소 도백의 기록을 세웠다.

이어 10·26 직후 최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정책2수석비서관과 정무수석을 지냈으며 5공 시절에는 교통·농수산·내무장관, 국회의원을 잇달아 지냈다.

6공시절인 지난 88년 4·26총선에서 민정당 후보로 재출마했다가 '황색돌풍'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곧바로 서울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평생에 한번도 맡기 어려운 요직을 두루 거친 것은 '행정의 달인'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탁월한 행정능력과 원만한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게 공통된 평가다.그는 6척장신의 거구이지만 매우 온화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을 편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업무추진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지난 38년 서울 창전동에서 출생했다. 그가 옥구(沃溝) 출신으로 알려진 것은 부친 고형곤(高亨坤)전전북대총장을 비롯한 그의 조상이 대대로 이곳에 뿌리를 내려왔기 때문이다.부친은 지난 6대국회에 야당이었던 민정당후보로 군산·옥구에서 출마, 당선됐으며 지역주민들에게는 아직까지 '강직한 야당의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부친은 또 김대통령이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의 은사이기도 하다.

성장과정에서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총리내정자는 관계에 입문할 때 부친으로부터 △남의돈을 받지 말라 △누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말라 △술 잘 마신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하라는세가지 교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아래서 서울시장으로 일할 당시 정태수(鄭泰守)씨의 한보그룹에 대해 수서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라는 외압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다 경질되는 강직함을 보이기도했다.

다만 '밑빠진 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주불사형'이라 부친의 '절주훈계'만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내던 80년 봄 신군부가 등장하고 5·17확대계엄조치가 내려지자 '군정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표를 냈으나 1년도 안돼 교통장관으로 복귀해 5공에 참여했다는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부인 조현숙(趙賢淑·59)씨와 사이에 큰 아들 진(36), 둘째 휘(35), 셋째 위(29) 등 3남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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