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섭 안기부차장 경질배경

입력 1997-03-01 14:43:00

김기섭(金己燮)안기부운영차장의 경질은 '김현철(金賢哲) 사단'이 급격한 퇴조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또 현철씨가 그동안 마음속에 키워왔던 '소산(小山)의 꿈'이 끝내 좌절의 위기를 맞게 됐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미 김씨 주변인사들에 대한 사정당국의 내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게 사실이다. 김차장 경질은 '김현철 인맥 자르기'의 신호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차장이 현철씨와 관계를 맺은 것은 지난 92년 14대 대선 직전. 당시 신라호텔상무로 근무하던김차장은 업무상 이 호텔에 드나드는 정·관계 주요인사들과 알게됐고 당시 김영삼(金泳三)민자당대표에게 특별한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타 계열사로 전보발령이 나자 사표를 내고 상도동을 찾아와 '의전을 담당하겠다'고 자원했다는 후문이다.

김차장은 김영삼대표가 민자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김후보 캠프의 주요멤버로 활동하기를 희망했지만 '상도동'의 고참가신들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현철씨에게 선을 댔던 것으로 알려졌고, 얼마후 그는 김후보 의전특보에 임명됐다.

김차장이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안기부 기조실장에 임명돼 예산과 인사를 장악하며 안기부의 '실세'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현철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게 정치권의 정설이다.청와대 경제수석과 각료를 지낸 P씨도 김차장과 유사한 절차를 밟아 현정부의 요직에 임명됐으며, 안기부 고위직 출신 O씨와 경찰 고위간부 출신 B씨의 출세도 현철씨 때문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과 같은 '김현철 사단'은 청와대와 신한국당을 비롯한 정계는 물론, 정보기관, 내각과 금융계등에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심어져 있다는게 야권의 주장이다.

야권은 현철씨가 아버지의 후광을 바탕으로 '정치적 야심'을 키워왔다고보고 있다. 단순히 아버지를 도우려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향후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통령 아들'이라는 신분을 십분활용했다는 것이다.

신한국당 일각에서도 현철씨가 여권의 정권재창출 작업을 주도하려는 '욕심'을 냈으며, 현철씨가어떤 대선주자를 선호하느냐가 여권 후보구도의 중요한 변수가 될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철씨의 한 측근은 "김소장 (현철씨 별칭) 사건은 한국정치의 현실이 대통령 아들의입지를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아들은 정치에 뜻을 두는 것 조차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라는 뜻이며, 이는 곧 현철씨가 정치의 꿈을 키워왔음을 사실상 시인하는 얘기다.

'소산의 꿈'은 그러나 결국 좌절의 위기를 맞고 있는게 사실이다. '김현철 사람들'은 최근 각종의혹설에 휘말려 숨을 죽이며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질된 김차장의 경우 현철씨와의 특수관계를 과시하며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제기되는 바람에 자칫 면직이상의 조치를 받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 없을 것 같다. 요직에 근무하다 이런저런 물의를 빚은 인사들 중에는 '김현철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철씨를 둘러싼 이런 각종 소문은 결국 사정당국의 내사 대상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와 가깝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인사들은 대개 현철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거나, 눈에 띄는 언행을 자제하고있다.

현철씨의 한 측근은 "김차장은 현철씨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희생양'이 된게 아니겠느냐"고 더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기대하면서도 "문제는 여론"이라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자생력이 없는 '김현철 사단'은 권력이 외면하면서 급속히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고, 14대 대선 당시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키워왔던 현철씨의 꿈도 결국 좌절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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