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현철의 노래

입력 1997-02-26 00:00:00

가수 현철의 노래는 군더더기 없는 컬컬하면서도 솔직한 음색과 가사가 매력적이다. 여기다 촌티나는 행동거지가 오히려 눈에 들도록 한몫 한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것만 같은…' 한때 유행했던'봉선화 연정'이라는 그의 히트작 첫 마디다. 유행가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못낼 순수한 표현. 여기다 어수룩하게 몸체를 흔들며 부르는 폼은 결코 밉상이 아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일까.누가 보아도 그를 세련된 가수로 보지는 않는다. 신인 가수 같을 때도 더러 있다. 요즘은 하도 연예인들의 단수가 높아 일부러 그런 표정과 매너를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현철을 좋아하는 팬들 대부분은 아마 그가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짓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보여주기 때문에 팬들이 더욱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담화'지켜보는 씁쓸함

어제 TV생중계를 통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김대통령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신인가수 같은 모습이 읽혔다. 물론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부를 때의 모습과는 비교할수 없지만 지금의 시국이시국이니 만큼 분명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한 모습같이 비치기도 해 왠지 씁쓸함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국민들은 기왕에 임기 5년중 4년을 넘기는 시점의 완숙한 모습이었으면좋았을텐데 앞으로 남은 절박한 1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당연히 육상선수나 수영선수의마지막 레이스같은 모습이 좋았을텐데 말이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패가 갈려 서로 으르렁댄다고 소문이 난 청와대 비서진들이 말리는 시누이역을 해 더욱 대국민 담화는 맥이 풀린다. 그래도 그 기라성 같은 청와대의 인물들이 의중을짜 맞추고 저자의 바람을 그들 나름대로 개인 플레이를 하든 단체 플레이를 하든 무슨 수로든지진언해 내놓은 작품이었을 게다.

**대통령아닌 아비의 모습

또 한가지. 이날 담화는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으로서의 모습보다는 한 아비로서의 모습이 간혹 강하게 비쳐져 마치 요즘 인기있는 '아버지'라는 베스트셀러 작품의 심리적인 원용이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부덕과 불찰의 용어 뒤에 숨은 수신제가의 의미가 무게를 더하기는 했지만 그게 어디 시중의 한 가정사인가.

지금도 시중의 어느 구석에는 이미 나돌고 있는 '양파'를 비롯한 그 많은 술 안주감 같은 시리즈에, 이날의 모습을 빗대어 또 얼마나 많은 다른 시리즈를 탄생시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되어 한바탕 웃는 국민들이 늘어나면 웃는 국민 또한 마음 편할리 없다.참 이상한것은 오늘날 같이 치술(治術)이 발달한 시대에 기껏 아비로서의 치술까지 대국민 담화에 버젓이 나와야 된다는 사실이다. 그 흔한 제왕학 한번 들춰 보여준 비서진들이 없었단 말인가.68세의 나이에 17세의 선조에게 바친 퇴계(退溪)의 '성학십도'같은 엄청난 학문은 줄 수가 없더라도 도산서원 근방만 떠올렸다면 어제의 담화는 또 다른 극적 효과를 얼마든지 보고도 남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기야 책임론만 무성하고 막상 책임질 사람이라고 없는 삭막한 현실에서 퇴계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퇴계는 관리를 냉관(冷官)이라고 했다. 공도를 지키고 사사로운 감정을 몽땅 빼 버리면 차가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마음이 염정(염靜·편안하고 고요함)하고 담박(淡泊)해진다는것이다.

한보문제만 해도 이런 명료한 구절만 암기해 있었다면 거창한 제왕학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오늘날의 사태는 적어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제왕학이 결국은 민(民)을 아는 방법이라면 아마도산서원 근방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성부른 일일 것이다.

**진정 民을 아는지…

성호(星湖)는 치자와 피치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국가됨은 군주가 있고 민이 있기 때문이며 군주와 민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라고 갈파하고 "대저 군주가 심(心)을 노(勞)하여 민을 다스리고 민은 힘을 노하여 군주를 섬겨, 양자가 서로 보혜함은 부(父)가 그 자(子)를 기르고 그 자가그 부에게 효도함과 같은 것으로 어느 하나가 없어서도 안된다. 민이 없으면 군주도 없다"며 국가에 있어서 군주는 그것 자체가 자족적인 존재가 아님을 말했다.

어려운 말 같기도 하고 굉장히 쉬운 말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군주와 민의 관계를 부자간의 관계를 예로 들어 말한것으로 파악하면 이해가 한결 쉬워진다. 어제의 TV 화면에는 왜 이런 도리가비쳐지지 않고 혹시 화면 저 뒤로 감춰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얄팍한의심증 탓일까.

또 다른 현철은 가수 현철의 컬컬하고 솔직한 음색을 내 보여야 한다. 같은 PK출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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