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90돌 그 교훈을 되새기자(4)

입력 1997-02-24 00:00:00

일제에 진 외채 1천3백만원(圓)을 국민이 대신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은 미완의 계몽운동이었다.일제의 탄압과 방해공작으로 이 운동이 사실상 중단된 1908년7월까지 국채보상운동 의연금 총액수는 18만7천여원. 당초 목표치를 크게 밑도는 모금액수였지만 우리 국민들의 위대성을 여실히확인시켰고 독립의 비전을 제시한 내용상 성공한 운동이었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자는 여론이 높아가고있는데 그 목소리를 들어본다.서인석신부(대구 효가대 종교학과 교수.국채보상운동 주창자 서상돈 선생의 증손)=증조부(서상돈선생)께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가난한 이를 돕는데 일생을 보내셨지만 정작 당신은 흰쌀밥 한번드신적이 없는 검소한 분이었다. 이같은 청빈정신이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뿌리였다. 현재 온국민이 근검절약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남미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이어받자.

백욱기씨(동국무역 명예회장)=일제때 개성 사람들은 일본산이라면 사탕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 사상 최대의 외채를 지고있는 이 시점에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을 펼쳐야 한다. 수입품과 사치품을 즐겨 사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도록 근검절약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자.

김영호씨(경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국채보상운동은 세계사에 유사한 예가 없는 독특한 시민운동이다. 이 운동은 물산장려운동과 해방후 부품.소재.자본재의 국산화 운동, 소비자의 자각운동의정신적 밑거름이 되었는데 고도성장후 명맥이 끊긴것 같아 아쉽다. 사료 등 흔적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9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사업과 재조명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박영규씨(대구문화방송 상무)=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가 대구라는 사실은 대구시민의 끈끈한 나라사랑의 기질이 실천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민이 담배를 석달간 끊어 외채를 갚자는 비교적단순한 논리로 시작됐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나라사랑 정신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운동이 시작된후 1년6개월동안 단하루도 빠짐없이 대한매일신보등 당시 언론들이 이 운동을 대서특필하는등 적극적 주체로 나선것은 요즘 언론에도 큰 귀감이라 생각한다.

이인중씨(동아백화점 사장)=시대적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는 90년전 국채보상운동의 교훈을 절실히 되새겨야 하는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동안 세계기업과 당당히 겨룰만한 경쟁력을쌓지 못한 국내기업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산업의 장기적인 부진과 수도권대기업과 외국기업의 공략으로 지역경제의 앞날은 어두운 실정이다. 지역기업의 각성과 경쟁력제고를 위한 배전의 노력이 요구된다.

강충씨(대구상공회의소 산업정보부 부장)=국채보상운동같은 애국계몽운동이 90년전 개화 여명기에 일어난것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할만하다. 90주년을 맞아 벌이는 제2의 국채보상운동은 범시민적 참여가 반드시 있어야 역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담배를 석달간 끊자고했듯이 지역민들이 하루 1백원씩 석달간 모아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이나 기념비를 세우는데 보태는 캠페인을 벌이자.

문찬씨(35.회사원.대구시 달서구 진천동)=국채보상운동은 우리 역사에 몇안되는 자주적인 애국계몽운동인데 발원지가 대구라는 점에서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갖게된다. 단순히 교과서에서나 볼수있는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한 국채보상운동을 지역언론이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조명한것은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정신이 전국민적 운동으로 부흥할수있도록 더욱 힘써주었으면 한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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