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사회 만들자(1)-총론

입력 1997-02-24 00:00:00

"곳곳서 '궤도 이탈'-정치도…경제도…사회도… '비정상'"

배가 침몰하려면 맨 먼저 쥐들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침몰에 직면한 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어깨에 힘주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아니다"며 제살길부터 찾는다.

지도층이 이 지경이니 국민에게 정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사회 구석구석에 비정상이 판친다.정치 뿐만이 아니라 경제도 교육도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해 있고 학교도 가정도 덩달아 비정상이다. 모두가 궤도를 이탈한 채 질주하는 열차와 같다.

특히 한보사태에서 그 정도는 극에 달해 있는 듯하다. 청와대부터가 그렇다.

대통령은 정권재창출 등 정치논리에만 몰두, 예의 승부사 체질을 버리지 않은듯 하고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얼이 모두 빠져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일정도 챙기지 못하고 외국정상과의 합의내용도 파악못하는 일이 속출한다. 보좌기능은 간데 없고'인의 장막'역할밖에 하지못한다. 그 와중에대통령 주변에서는 비리와 부정이라는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문민정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칼국수와 "재임중 돈은 일전도 받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술안주가 됐다. 쏟아지던 박수는 삿대질로 바뀌었다. 대통령말도 먹혀들지 않는다. "성역없는 수사"라는 말을 믿지않는다. 과거의 숱한 비리사건 처리를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누구하나 한보사태에 책임지는 이가 없다. 하늘이 압력을 행사하고 땅이 배후라는 말인지, 국민들은 납득하지 않는다.

정당도 여야 구분없이 비정상이다. 서민들은 전 재산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돈이 '떡값'으로 둔갑하는 현실에 답답하고 울화가 치민다. 국민들 눈에는 대통령 뜻이라면 잠을 설쳐 가면서 초등학교 신입생이나 할 법한 '앉았다 섰다'를 해뜨기 전 의사당에서 반복하는 여당의원들도 한심해보이고 야당도 매일 뭐라고 가시돋친 말을 쏟아내지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향해 짓는 꼴로 보일 따름이다.

또 검찰수사 결과 발표가 있기도 전에 국민들은 이미 결론을 내 버린다. "전에도 그랬고 또 그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보나마나"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검사도 됐다가 사정관계자도 된다. 이또한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비정상을 비정상으로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더 문제가있다.

나라 안만 비정상인 것도 아니다. 정치논리에 의해 진행되는 외교도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외교문제의 국내정치 악용사례가 잦다보니 국민들은 모든 것을 정치음모적 시각에서만 보려 든다. 안보문제도 믿으려 들지않는다. 황장엽노동당비서의 망명이 그러하고 이한영씨피격사건에 대해서 조차 음모설이 피어오른다. 또다른 불신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국제적 망신만당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권력의 붕괴다. 국가 권위가 부정되고 이는 체제 위기로까지 비화된다. 신뢰의 대상이 불신의 표적이 됐으니 나라의 기둥뿌리부터 흔들린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위로 대통령부터 아래로 공직자,기업인과 국민 개개인에까지 비정상을 정상인양 알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인 진단과 처방도 쏟아진다. 특히 정치가 백사(百事)의 근원으로 지적된다.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우리 현실로서는 무리도 아니다.

정치가 엉망이니 경제가 잘 될 리 없고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너나 할 것 없이 정상으로의 복귀와 제자리 찾기가 시급한 시점이다. 그렇지않고서는 국난 극복은 물 건너가고 21세기의 문턱에서 주저 앉을 위기에 처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봉호교수(서울대·철학)는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미래가 불확실하니 우선 눈앞 이익에만 몰두, 원칙보다는 변칙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사회 구성원들 모두 옳고 그른 것은 판단하면서도'나 혼자는손해볼 것 같다'는 마음과'남들이 다 그러니까'라는 네탓주의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손교수는 이어 "백척간두에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시민들과 양심적 지식인들부터 일어나서 대대적사회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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