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8월 22일=사천성 광안현 협흥진 패방촌에서 객가인(客家人·중원에 살다가 전쟁을 피해남쪽으로 이주한 집시성격의 한족을 일컫는 말)집안의 사대부 후손으로 지주인 부친 등문명(鄧文明)과 모친 담(譚)씨 사이에서 3남1녀중 장남으로 출생.
▲1920년=근로장학 방식으로 프랑스 유학.
▲1924년=중국공산당 구주지부 입당.
▲1926년세=모스크바 동방대학및 중산대학에서 수학.
▲1927년=귀국. 당명에 따라 광서성으로 가 지하공작활동에 종사, 이때 본명이었던 등희현(鄧希賢)을 등소평으로 개명, 이 해 겨울 상해에서 첫번째 부인인 장천원과 결혼.
▲1928년6월=중공 제6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중앙부비서장에 선명됨.
▲1931년=부인 장씨 사망. 강서 영신으로가 모택동(毛澤東)및 주덕(朱德)과 합류, 이 해에 김유영과 두번째 결혼.
▲1932년=강서성 서금현당위원회 서기, 33년 강서성당위 서기, 모택동노선을 추종하다가 당에서추방당함(1차실각), 김유영으로부터도 이혼당함.
▲1934년=홍성지 총편집 자격으로 장정참가.
▲1937년=홍군의 개편과 함께 신설된 8로군 총정치부 부주임
▲1940년=신설 태행군구 정치위원, 현재의 부인인 탁림(당시 24세, 등은 36세)과 세번째 결혼.▲1945년=중공당 제7기전국대표대회서 중앙위원에 선출, 이어 중앙서기국 서기.▲1946년=국공내전 시작.
▲1949년=장강(양자강)을 도하해 남경을 공략, 중앙화동국을 설치하고 제1서기에 취임.▲1949년11월=제2야전군을 이끌고 사천, 귀주, 운남성등 4개성을 공략하고 12월엔 중앙서남국을설치하고 제1서기에 취임.
▲1952년8월=정무원부총리(당시 총리는 주은래)
▲1955년5월=7기 5중전회서 당중앙정치국원에 선임.
▲1959년4월=국무원부총리, 국방위부주임에 재선.
▲1966년6월=문혁시작, 8월=국가주석 유소기(劉小奇)등과 함께 자본주의자로 몰려 67년일체의 공직에서 추방돼 강서성에서 노동개조를 받는 등 수모.
▲1973년3월=주은래의 도움으로 국무원부총리로 복직, 8월 10중전회서 당중앙위원직도 회복. 이어정치국원직도 회복.
▲1975년=10기 2중전회(1월)서 당부주석, 정치국상무위원으로 승진, 4기전인대서 부총리 재선, 인민해방군총참모장 겸임
▲1976년4·5월=청명절 주은래 추도 천안문 군중집회 배후조종자로 몰려 당·정·군의 일체의 직위에서 해임, 다시 실각. 그러나 주덕(朱德)·엽검영(葉劍英)등 등에게 우호적인 군원로들의 반대로 당적박탈은 면함, 이해 9월 모택동이 사망하고 9월에 강청(江靑)등 4인방이 체포됨.▲1977년3월=당중앙공작회의에서 엽검영·이선념(李先念)·화국봉(華國鋒)·허세우(許世友)등의주장으로 등의 복권 결정
▲1978년3월=5기전인대에서 제1부총리 취임, 5기정협전국위 주석에 피선. 문혁희생자들 적극 복권시켜 요직에 재기용.
▲1980년3월=군총참모장 사임, 화국봉을 당주석직에서 몰아내고 정치국을 대폭개편, 당총서기체제로 전환하여 총서기에 자신의 심복 호요방(胡耀邦)을 기용.
▲1980년9월=다른 원로 부총리들과 함께 부총리직 사임하고 화(華)를 총리직에서도 해임, 심복 조자양(趙紫陽)을 총리에 기용, 국무원을 대폭 개편하여 등체제를 확립.
▲1981년6월=11기6중전회서 당중앙군사위 주석에 취임, 군을 직접 장악.
▲1983=6기전인대 1차회의에서 신설된 국가중앙군사위주석에 선출. 이때 양상곤(楊尙昆)이 신설국가주석직에 선임.
▲1987년1월=당정치국확대회의에서 호요방을 당총서기직에서 해임하고 조자양을 총서기로 기용.이해 10월 당13전대및 13기1중전회에서 자신도 중앙위원, 정치국원,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사임했으나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계속 보유.
▲1988년4월=7기전인대서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에 재선. 이붕(李鵬)을 신임총리에 기용.▲1989년6월=대규모 민주화시위인 천안문사태 유혈진압. 이후 정치국확대회의 열고 조자양 등 개혁파 지도자 대거 축출하고 강택민(江澤民)을 당총서기에 기용.
▲1989년11월=13기5중전회에서 당중앙군사위주석직 사임
▲1990년3월=7기전인대 3차회의에서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도 사임함으로써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남.
▲1991년말~92년2월=남순강화(남부지방 순시하며 행한 연설과 담화)로 개혁·개방의 심화확대를역설.
▲1992년10월=당14전대회에 불참했으나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과 개혁·개방심화확대를 당의 지도이념으로 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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