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날치기 파문이 있은지 두달 남짓, 한보파문이 불거진 지 20여일 동안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꿀먹은 벙어리'시늉만 하던 여권이 최근 며칠 사이 사과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18일 무책임을 고수하던 한승수경제부총리까지 나서 "한보사태는 금융부조리 뿐만아니라 금융감독 구조에도 문제가 있음을 보였다"며 '책임통감'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당 내부의 정부책임론 등각종 압력에대한 굴복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정책결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하던 자세의 중대한 변화였다.
이에 앞서 나온 사과시리즈 첫 편은 17일 김광일청와대비서실장이 주연이었다. 김실장은 이날 오전 재외공관장회의에서 "최근의 국내정세에 대해 면목이 없다"며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부응치 못하고 있다"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반성의 정도가 "뼈아픈 수준을 넘어 영혼이 아픈 정도"라고까지 했다. 또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두 자리 아래로 떨어졌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라고도 했다.
시리즈 2탄의 주연은 같은 날 임시국회 개회사를 한 김수한국회의장이었다. 김의장은 이 자리에서 "15대국회의 궤도 이탈에 대해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한다"고 했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와 한보사태에 따른 몇몇 의원들의 구속사태까지 포함하는 발언이었다. 김의장은 이어 "입법부의 대표로서 깊은 자책감을 느끼며 석고대죄하는 심정"이라고했다.
이수성국무총리도 18일 사과 대열에 동참했다. 이총리는 이날 국회본회의 국정보고를 통해 "모든국민들이 불안과 분노, 그리고 허탈감에 빠지게 됐다"며 "책임을 통감하며 능력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다.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자성론을 전개했다.이홍구신한국당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19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해 국회 등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노동법 파문과 관련, 이대표는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하고 사과드린다"는 말을 했다. 불가피했지만 할 수 밖에 없었다던 자세에서 물러난 것이다. 여론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때문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과 중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김영삼대통령의 25일을 전후한 대국민담화일가능성이 높다. 시리즈 중 완결편인 셈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노동법파문과 한보사태에대해 국정의최고 책임자로서 국민들을 향해 솔직한 사과의 뜻을 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덕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문민정부의 핵심까지 비리에 연루된 사태에 대해 고개숙여 용서를 구하고 국정의 일대 쇄신을 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자리 수 아래로 떨어졌다는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대통령까지 포함하는 여권 고위인사의 잇따른 사과표현으로 얼마나 올라갈 지, 폭발을 준비하며 내연(內燃)하고 있는 여론이 잠재워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리 점쳐본다면 부정적이다. 〈李東寬기자〉





